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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Oct 23. 2021

Ep.5 - 내 가족의 아픔이 될 때

앞서 언급한 동생은 우리 가족의 걱정  대상 1호였다. 늘 빠릿빠릿하고 미래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한 오빠와 고집불통에 부모가 혼을 내든 말든 할 말은 기어코 다 하고야 마는 왕싸가지 나와 달리 내성적이고 늘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동생이 혹시나 군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할까 봐 엄마 아빠는 동생이 중학생일 때부터 걱정하셨다. 중학생...... 너무 이른 걱정이셨던 것 같기는 하다. 


군대 가서 성격이 바뀌길 원하시면서 군대 가서 적응을 못할까 봐 걱정하시는 건 참 애처로운 모순이다. 동생의 입대일이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하셨고 동생에게 "혹시 누가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꼭 이야기해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1,579번 정도 반복하셨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매번 "이제 다 큰 성인인데 무슨 걱정이야. 엄마가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다 알아서 잘할 거야."라고 타박 섞인 안심을 시켜드렸다. 


하지만 솔직히 나도 내심 많이  불안했다. 저  녀석이 진짜 못된 선임을 만나서 괴롭힘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눈치 없는 행동으로 찍히면 어쩌나. 힘든 일을 어디 말도 못 하고 끙끙대다가  극단적인 일이라도 생겨버리면 어쩌나 등등. 


그 걱정이 무색하게 동생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전역했다. 하지만 전부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리 가족의 걱정대로 동생은 선임 한 명과 원만히 지내지 못했다. 하지만 동생 특유의 눈치 없음 덕분으로 '저 선임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고 질렀고, 부대를 옮겨 그곳에서 분대장까지 하며 잘 생활했다.   


정작 군대에서 심한 고통을 받은 사람은 오빠였다. 오빠가 군대 갈 때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오빠가 군 생활을 못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아마 오빠도 자신을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어른들에게 잘하고, 눈치 빠르고, 대학교에서 과대표를 했을 정도로 활발한 오빠였다. 선임에게 너무 예쁨 받아 군 생활 너무 편하게 하고 오는 건 아닌지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은 그저 오빠의 군 생활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늘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만 이야기하던 오빠가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안 것은 그가 상병이 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휴가를 나온 오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오빠의 고백이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괴롭힘이 있었다고 오빠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행정병이었던 오빠는 사수에게 '일을 못한다'며 매일 산더미 같은 일을 받았다.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업무 양이었다. 그 일을 마치면 새벽 3시. 오빠에게는 양말이 한 켤레밖에 없었다. (왜 한 켤레밖에 없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조용히 양말을 손빨래하고 선임들이 깰까 봐 조용히  내무반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다. 3시간 뒤면 다시 그 양말을 신어야 했다. 양말을 말리기 위해 배 위에 양말을 올리고 잤다고 한다. 


그렇게 끝없는 갈굼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오빠는 결국 '도저히 못하겠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기고 업무를 거부했다. 주변에서 오빠의 편을 들어주는 선임은 없었다. 영창을 갈 뻔한 위기에서 오빠를 좋게 본 어느 부사관 한 명의 도움으로 부대를 옮길 수 있었다. 전출 후 오빠는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이야기하는 오빠 앞에서 나는 눈물을 쏟았다. 내가 아는 오빠는 누구보다도 힘든 일을 잘 참아내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상부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것은 다른 의미의 극단적 선택이었다. 의지할 곳 없이 벼랑으로 내몰리면서도 오빠는 한 번도 가족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 끝났어. 걱정 안 해도 돼'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나는 여전히 그날을 돌아볼 때마다 울컥한다. 소중한 가족의 힘겨움을 먼저 알아채지 못한 못난 가족이었다는 것이 미안하다. 21살 어린 청년이 경험해야 했던 처절함이 생각나 고통스럽다. 그 이후로 나는 군대 가혹행위 관련 기사를 단 한 번도 허투루 본 적이 없다. 아무 잘못도 없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가야만 했던 군대에서 이런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엄청나게 큰 상처가 된다. 


'걔가 문제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고 싶다. 모든 괴롭힘은 부당하며 거기에 정당한 이유란 없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는 곳이 슬프게도 현재의 대한민국 군대이다. 


모든 군인에게는 가족이 있다. 모든 군인의 아픔은 곧 모든 가족들의 아픔이다. 최근 5년간 군대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국방부 통계 사망자(383명)의 69.1%에 달한다고 한다. 다행히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그들의 가족들이 '군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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