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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Oct 23. 2021

Ep.10 - 불편한 이야기, 군대와 성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통계자료 언급으로 시작해야겠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여성가족부의 의뢰를 받아 연구 조사한 '2019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20세 이상 60세 미만 성인 남성의 42.1%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의 성구매를 경험했다. 최초 성구매 연령은 20세 이상이 53.9%로 가장 높고, 25세 이상(26.8%), 30세 이상(10.3%) 순이다. 


최초 성구매 동기는 '호기심'이 28.6%로 1위, '군입대 등 특별한 일 전에'가 20.4%로 2위, '회식 등 술자리 후 함께'가 18.9%로 3위를 차지했다. 


20세에서 24세 남자의 상당수가 '군대'를 계기로, 혹은 '군대'에 있어서 성매매를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말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남자들은 여자들과 있을 때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보통 '성매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없다. 그러다 문득 통계로 마주하는 세상은 놀랍다. 내가 만나는 주변 성인 남자 중 절반 가까이가 성매매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니. (조사의 특성상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통계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접하던 기자 시절에는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혹시 저 사람도 성매매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너무 자주 들어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군대에서 처음 성매매를 경험했다는 내 또래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임과 외박을 나왔는데 그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후회가 된다며 그 기억 자체를 잊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 상당수 남자들이 군대에서 처음 성매매를 경험할 거라고 말했다. 군대 가기 전에 '총각 딱지'를 떼야한다며 친구들이 돈을 모아 함께 성매매를 한다는 이야기, 군대에서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누군가의 주도로 여럿이 우르르 성매매 업소를 간다는 이야기는 모두 도시전설이 아닌 실제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했다. 그것도 특수한 사례가 아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듯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직장인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부서 회식을 했는데 2차가 끝난 뒤 부장님이 여직원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더란다. 그리고 남은 남자 직원들에게 열쇠를 하나씩 나누어 주더라는 것이다. 근처 모텔로 가면 된다고 하면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거기서 혼자만 안 가겠다고 하면 부장님에게 찍힐 것 같았다고 했다. 들어간 방에는 성매매 여성이 있었고 그녀와 30분 정도 이야기만 나누고 집에 왔다고 했다. 


부장님이 자연스럽게 열쇠를 부하 직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떤 경험을 거쳐왔기 때문일까. 열쇠를 받아 든 이들이 거부하지 못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각자의 방으로 자연스럽게 흩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떤 경험을 거쳐왔기 때문일까. 그 과정 속에 혹시 '군대'가 있지는 않았을까. 


이미 많은 이들이 언급한 '기지촌'의 문제나 우리나라 성매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취약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상태에서 남성 집단 내의 왜곡된 성인식을 접하거나 성문화를 접했을 때 그게 그 사람의 남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는 그로 인해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 상상하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 


MZ세대 여성들을 만나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성들이 '확인하기 어렵지만 의심스러운' 정황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너무 많아 의심하는 순간 본인이 힘들어지게 되는 군필자들이나, 남자들끼리 필리핀 여행을 다녀왔다거나, 회식을 했는데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등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통계'라는 숫자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 사실 여성들도 우리나라 남성들의 성매매 문화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남자들만큼 '잘'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불신은 결국 풀기 어려운 갈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남성, 여성 양쪽 입장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모습을 보며 이 갈등의 시작 지점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군대'라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6년 자료이기는 하지만 전 세계 불법거래시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미국의 '하복스코프(Havocscope)'가 발표한 각국의 1인당 성매매 지출 순위에서 한국은 약 29만 원으로 1위 스페인(약 65만 원), 2위 스위스(약 51만 원)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성매매가 불법인 국가 중에서는 1위라고 한다. 성매매 산업 규모로는 약 14조 4000억 원으로 24개국 중 6위에 올랐다.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요즘 Z세대들은 다르길. 그들이, 특히 남성 Z세대들이 내게 "지금 언제 적 자료를 갖고 이야기하세요. 군대 간다고 성매매? 선임 따라 성매매?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요."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나도 혹시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나라가 징병제 국가라도, 조금 편한 마음으로 그를 군대에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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