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arah May 01. 2017

저기요, 저 사실 힘들어요

"힘들다" 라고 말하기 어중간한 나이란 없다 

동영상을 검색하다 우연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다혜' 씨의 신촌 유세 발언 영상을 보았다. 


나는 사실 그녀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더 지니어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해진 프로바둑기사라 하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해설도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모른다. 나는 오목은 둘 줄 알고 알까기는 해도 바둑은 전혀 모른다. 더 지니어스도 보지 않아서 사실상 이 날 처음 본 사람이다. '젊어 보인다' 또는 '어려 보인다'의 느낌을 주는 사람인데 공동선대위원장이라 소개가 되니 속으로 '이거 또 유명인 내세워 젊은 사람들 관심 끌어보려는 수법이구먼.' 생각했다. '그러기에 바둑기사라니 너무 젊은 사람들 취향하고 거리 먼 사람을 선택한거 아닌가. 급했나? 할 사람이 없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방송용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이었던지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영상을 끌까 잠깐 고민하다 가식없는 살짝 어설픈 모습에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2분 남짓, 나는 그녀와 함께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툭 눈물이 떨어진 부분은 바로 그녀가 

"여러분 저희는 저희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죠?" 라고 말했을 때였다. 


흔히

젊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냐고 부럽다고 말한다. 

내가 너 나이였다면 펄펄 날아다닐텐데 라고 말한다. 

아니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에 답하는 건 참 힘들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이를 주제로 공격이 들어오면 이미 얘기 끝난거 아닌가. 진심을 이야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다. 지금 이 시대에 젊어서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고 싶고, 서울에서 전월세얻어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면 안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고, 우리도 선진국처럼 일 좀 덜하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생각하면서 살고 싶은데 왜 그게 응석이냐고 항의하고 싶고, 청춘을 내내 아프게 보내고 청춘이 끝나면 도대체 인생에서 뭐가 남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다. 


이다혜 씨의 나이를 찾아보았다. 1985년생. 나와 나이가 같다. 30대 초반. 딱 어중간한 나이이다. 우리는 부모 세대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잘 안다. IMF시기, 우리는 사춘기였다. 한창 예민한 시기에 '외환위기'라는 국란을 경험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방황하고, 사업은 부도를 맞고, 가게 문을 닫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매일같이 뉴스를 타고 전해졌다. 졸업여행, 수학여행이 취소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야했던 시기를 거쳐, 대학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하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었던 20대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30대가 되었다. 이제 좀 '나'를 위해 살아가고 싶은데, 직장에서 간신히 자리잡고 실력도 좀 증명해보이고 싶은데, 인구절벽이니 결혼해서 애 낳으라고 한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젊으니 우리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는 그래도 당신들은 일은 하고 있으니 우리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작 우리는 우리가 뭐가 나은건지 잘 모르겠는데 마치 끝나지 않는 죄인이 된 기분이다. 어릴땐 하필이면 이 어려운 시기 학교다니면서 부모 힘들게 한 죄, 나이 들어서는 어린 친구들보다 회사 쉽게 들어가서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는 죄. 


힘듦을 이해해주지 않고 그저 '열심'만 강요하는 사회에서 30대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가혹하다. 결혼을 하면 희망이 보이나. 애를 낳으면 전혀 다른 세상이 찾아오나.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참고 버티면 언젠가는 나아지나. 언제? 당신들은 나이들었고 우리보다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 말하니 그 '언제' 좀 예언해주면 안되나. 


이다혜씨는 2,30대 모든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차원에서 이야기 한 것일테지만 나와 같은 나이의 그녀가 사람들앞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대해 말하며 눈물을 흘릴때, 나는 큰 공감과 함께 치유가 됨을 느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구나.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우리는 사실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이렇게도 간절히 필요했구나. 마음 속 꽁꽁 싸매놓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작은 조각을 알아봐 준 느낌이었다. 


아프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는 나이가 있는 건지, 가끔 생각하곤 한다. 33살의 내가 40살쯤 되면 더는 이런 이야기에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될 만큼 이른바 '어른스러워지는' 걸까. 20살땐 30살이 되면 더는 힘들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걸 보면 그런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소망하는 것이 있다. 40살이 되어 힘겨워하는 30살을 보게 되면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나에겐 서울대 졸업 앨범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