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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Jun 17. 2017

나에겐 서울대 졸업앨범이 없다 - 2

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즘도 종종 생각한다. ‘과연 내가 다른 대학을 나왔다면, 지금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실 어떤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주어진 건 아닐까. 후진적인 시스템, 창의력보다는 단순 암기가 중요한 한국의 초중고 12년을 그럴듯하게 보냈다는 이유로 들어가게 된 대학치고 세상은 너무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 건 아닐지. 


예상치 못하게 들어간 학교였지만 대학생이 되는 기쁨과 설렘은 자못 컸다. 집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래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고백건대 그 마음 한켠에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입학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기쁨과 설렘은 입학하기 전 모든 친척들과 학교 선생님, 친구들의 주목을 받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주어진 달콤한 사탕이었을 뿐이다. 입학과 함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부적응의 세계로 던져지게 됐다. 그 시작은 동기들 간의 대화에서부터다. 


아직 서로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3월 초의 어느 날. 과방에 모인 동기들 사이의 대화에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보니 수능 점수에 대한 것이었다. 


총점이 몇 점이냐, 무슨 영역 점수는 어떻게 나왔냐.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된 수능 점수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확대되어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우리 과의 절반 이상이 지방 출신이었고 그중 상당수가 지방의 명문고를 나왔다. 동기들은 신기할 정도로 학교 이름을 듣자마자 명문인지 아닌지를 가려냈다.) 어느 경시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지, ‘도전 골든벨’에 나가서 최종 몇 명까지 들었는지 등을 신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학교 외에 어느 학교 어느 과를 지원했는지와, 그곳에 합격했지만 이곳을 선택한 이유 등에 대해서도 대체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사범대는 서울대의 단과대학 중에서 인기가 없는 편에 속했지만 이들이 여기를 지원한 이유는 대부분 수능 성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왔기 때문이었고 다른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서울대' 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를 비롯해 그런 사람들은 소수파에 속했다.


나는 그 대화에 처음부터 끝까지 낄 수 없었다. 혹시 나에게 수능 점수 몇 점 받았는지 물어볼까 봐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며 듣고만 있다 비로소 깨달았다. 이 친구들의 대화는 전교 1등들이 모여서 하는 아주 흔한 대화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이들과 섞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도. 


우수한 아이라 여겨지며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모두의 기대 속에서 자라온 사람의 삶이란, 정신세계란 저런 것이구나. 마치 한 편의 연극에서 나 혼자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관객이 된 느낌이었다. ‘전국 상위 1%’의 리그에서 3부리그쯤 되는 팀이 느닷없이 승격되어 함께 지내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 대학 생활의 환상이 처음으로 깨지며 외로움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초중고 시절 나와 친구들에게는 ‘해도 안 되는 일’이너무 많았다. 인문계를 들어왔으니 모두가 대학을 향해 달려가야만 했던 그때, 주어진 조건이 모두 다른데 같은 코스를 밟아 같은 결승점에 도착해야 하는 불평등 속에서 거의 매일 자잘한 좌절들에 시달렸다. 내 경우에는 해봤자 크게 늘지도 않고 사교육은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았던 ‘수학’이 가장 큰 것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대체로 상황이 더 나빴다. 옆에서 보기에도 공부에 소질이 없는 친구에게 공부만 해서 대학에 가야 하는 조건은 매우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숱하게 만난 이 대학 출신 사람들은 ‘해도 안 되는 일’ 이 있다는 것을 대체로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안다. 우리는 아마 당신들보다 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당신들보다 머리도 집중력도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해도 안 되는 일의 작은 듯 큰 좌절감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건 ‘그럼 왜 열심히 안 했어?’라고 간단히 말하고 넘겨버리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나와 친구들에게는 공부만 하기엔 함께 나누고픈 즐거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 티브이 속에는 멋있는 연예인들이 너무 많았다.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근처 분식집에서 먹는 떡볶이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었다. 주말에는 가끔 독서실 간다고 말하고 동성로에 나가 사지도 못할 옷을 걸쳐보고, 서점에 들러 책보다는 예쁜 펜을 사곤 했다. 수업시간에 책상 서랍에 숨겨두고 입 안에서 녹여 먹던 과자는 기절할 만큼 맛있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떠는 수다가 훨씬 재미있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은 '축알못'이었지만 꼭 보고 싶었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고 박수를 치고 거리에서 사람들과 환호하고 싶었다. 꽉 짜인 시스템 속에서 소소하거나 때론 당연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탈’이 필요했고 걸렸을 때도 처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사실 동기들과 수능 점수가 아닌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전교 1등을 놓치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우울해하고, 교칙을 어기는 건 (생활기록부 점수 때문에라도) 상상할 수 없는 모범생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몇몇은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자기 손으로 옷 한 벌 사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온실 속 화초이기도 했다. 


그들이 나와 내 친구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것들을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아마 자신들의 꿈 ‘서울대 입학’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꿈을 향해 누구보다 성실히 달려왔고 원하는 보상을 받았다. 다만 평범한 일상과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걸 한심하다 생각했을 사람들이 결국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큰 혜택을 누리게 된다면 불합리한 제도 속에 이리저리 치이며 상처받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과 즐거움을 찾으려 애쓰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세상은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은 이른바 SKY 출신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진짜 인간다운 인간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그 회사를 나오고 더 이상 출신 대학과 과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회사들을 여러 곳 다니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졌다. 그리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하며, 실제로 그걸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멋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대학 출신들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을 보고 배운 약 5년간의 시간이 대학과 첫 직장 약 10년 간의 시간보다 훨씬 가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를 다녀온 앨리스의 삶과 생각이 그 이전과 같아질 수 없듯이, 어느 날 갑자기 상상해본 적 없는 상위 1%의 세계에 던져져 이리저리 방황하며 얻은 경험과 교훈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확신한다. 가장 작게는 ‘최소한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에서부터 크게는 우리 사회 소위 엘리트들의 행동양식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인 사고까지. 종종 터지는 배우신 분들의 충격 발언과 갑질 행태가 그리 놀랍지 않은 이유다. 그렇지만 아무리 배운 게 많아도 다시는 그 세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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