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arah Oct 23. 2021

나는 병영국가에 산다 - Prologue

"군인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00국민학교 2학년 3반 000이라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학교에서는 매년 군인 아저씨를 위한 편지와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해마다 받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편지를 정성껏 썼다. 내 머릿속에는 개인의 이름이 있는 게 아닌, '군인 아저씨'로 통칭되는 집단이 존재했고 그들의 모습은 교과서 삽화 속 철모를 쓴 웃는 얼굴이거나 연말연시 뉴스 화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휴전선을 따라 걷는 코와 볼이 빨간 군인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주 일요일 MBC에서 방영되던 '우정의 무대'를 즐겨봤다. 여러 군부대를 다니며 군인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가수들이 위문 공연을 하는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코너인 '그리운 어머니'였다. 


"엄마가~보고플 때~"로 시작하는 구구절절한 노래는 어째선지 매주 심금을 울렸고 가림막 뒤에 앉은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하다며 힘주어 말하는 병사들 중 진짜 아들이 없을 때의 당혹감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이 어머니를 찾으러 나와야만 어머니를 업고 포상 휴가를 갈 수 있는데...... 뒤늦게 저 뒤편 어딘가에서 뛰쳐나온 엄마의 목소리도 제대로 모르는 아들을 어머니들은 원망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모두의 아쉬움이 극을 향해 달릴 때쯤 어깨에 별이나 꽃무늬 같은 걸 여러 개 달고 있는 높아 보이는 분이 나와 은혜롭게 포상 휴가를 하사하시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1997년, 내가 중1이 되며 우정의 무대는 종영됐다. 하지만 '군대'를 다룬 프로그램들은 방송사를 옮겨가며 계속 전파를 탔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연예인이 입소를 해 좌충우돌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폭소를 터트리기도 했고, 특전사 출신 전역자들이 출신 부대의 명예를 걸고 대결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비단 매체를 통해서만이 아니다. 대학에 입학하자 실제 군인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내 주변 남자들은 군대를 기준으로 몇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할 수 있었다.   

아직 군대를 가지 않아 불안에 떨거나   

복학생 이거나   

신의 아들이거나    

ROTC이거나   

카투사이거나 

휴가를 나왔거나


오빠와 남동생이 있다보니 군대란 가족과 직접 연관된 이슈이기도 했다. 각각 2003년과 2007년 군대에 간 오빠와 남동생 때문에 당시 군대 관련 뉴스 기사를 유독 열심히 봤다.   


취업 후에는 직장 남자 동료들의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군대에서 밥 먹은 이야기, 군대에서 청소한 이야기, 군대에서 훈련 나간 이야기, 군대에서 훈련 나가서 밥 먹은 이야기 등등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었다. 


여기에 잊을만하면 티브이에 등장하는 각종 군대 관련  예능은 이제 유튜브로도 진출했고,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든 드라마 <D.P.>를 보고 PTSD를 경험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적고 나니 더욱 느끼는 거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 이후로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해가 없다. '군대'라는 명사는 마치 공기처럼 내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 해에는 군인 가족이었으며, 지금은 군필자의 아내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을 포함해 이 모든 것들은 하루하루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왔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피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굳이 피할 생각을 갖지 않고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을 굳이 '병영국가'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그 당연함에서 조금만 떨어져 바라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낯설고 때로 불편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의 한 조각에 '군대'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그제야 맞아떨어지는 현상들이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다. '병영국가'에 대한 이론이나 담론이 아닌, 생활하며 느끼는 소소하거나 때론 커다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 낯섦, 불편함에 공감한 사람들이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랬어? 하하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랬어? 근데 그때 괜찮았어?'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와 내 주변의 모습을 조금 더 명확히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훨씬 다른 얼굴을 하고 다가올 것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