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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Oct 23. 2021

Ep.1 - 앞으로 나란히!

그렇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에게 병영국가의 시작이란.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으로 갔던 그날. 나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터무니없이 작은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심지어 또래 중에서 키도 작은 편이었다. 


어디 숨어있다가 이렇게 모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운동장에 와글와글 모여있는 아이들은 시간에 맞춰 각자 배정받은 반으로 흩어져야 했다. 하지만 아직 입학식은 시작되지 않았다. 엄마의 손을 놓고 어안이 벙벙해진 아이들을 담임 선생님은 능숙하게 줄 세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양 팔을 앞으로 쭉 뻗도록 시켜서. 내 인생 첫 '앞으로 나란히'였고 내 생애 처음으로 오와 열을 맞춘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줄이 맞춰지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나는 맨 앞으로 가야 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앞으로 나란히'를 시켰다. 나도 손을 들자 선생님은 내 손을 내리며 말했다. "맨 앞사람은 손을 드는 거 아니야."


줄이 다 맞춰질 때까지 입학식은 시작되지 않았다. 3월 초의 황량한 운동장에서 7살 8살 아이들에게 공교육은 줄 맞추기를 제일 먼저 가르쳤다. 그땐 몰랐다. 그게 학창 시절 내내 나를 괴롭혔던 제식훈련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땐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좌향좌' '우향우'라고 같은 단어를 두 번이나 말하는지. 그냥 몸을 틀면 될 걸 왜 굳이 한쪽 다리를 뒤로 보내면서 옆으로 회전해 스텝이 꼬이게 만드는지. 나는 지금도 거울 속 왼손 오른손이 가끔 헷갈리는 심각한 방향치다. 대부분 체육시간에 이루어진 이런 류의 연습은 한 명만 틀려도 계속됐다. 왼쪽 오른쪽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방향에 맞춰 발을 뒤로 보내고 자연스럽게 회전하는 것까지 신경 쓰기는 너무 힘들었다. 휘청하며 넘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 나 때문에 우리 조 친구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땐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팔 벌려 뛰기를 하면 마지막 횟수는 말하면 안 되는지.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팔 벌려 뛰기를 하다 보면 누구 한 명은 꼭 마지막 숫자를 말했다.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는 건 우주의 힘이 정한 법칙 같았다.  그러면 바로 다시 팔 벌려 뛰기 시작. 운이 나쁜 날은 다시 시작할 때마다 횟수가 늘어났다. 우리의 멘털은 점점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성공하겠지' '이번엔 성공해야 돼' 모두의 간절함이 모여갈수록 숫자를 말하는 목소리는 악에 받쳐 점점 커져갔다. 마치 울부짖음처럼. 그러다 진짜 마지막! 아뿔싸, 누군가 마지막 숫자를 말해버렸다. 모두의 차가운 시선이  그 아이에게 꽂힌다. 들으라는 듯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차렷'과 '열중쉬어'가 세트인 것도, '하나, 둘 야!' 하며 뛰어가는 것도, 발을 맞춰 팔을 휘두르며 걸어가는 것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하나' '둘' '번호 끝'하며 점호를 하는 것도. 아무도 내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이유도 모른 채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했던 이 모든 행동들이 군대에서 하는 훈련이었다는 것을 대학생이 되고서야 알게 됐다. 


나는 사실 아직도 왜 그런 훈련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 학교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던 걸까. 모두가 오와 열을 잘 맞춰 한 명의 이탈 없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걷거나 뛰길 바랐던 걸까. 그때의 우리는 사실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게다. 


어느새 우리는 누군가 '차렷'이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허리를 곧게 세우며 손을 단정하게 허리 옆으로 붙이고 경직되기 시작한다. 나란히 줄을 맞춰 서고,  내 발걸음을 옆 사람과 맞추다 보면 원래 나의 자연스러운 보폭을 잊게 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한 번쯤 손을 들고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다. "선생님, 우리는 지금 이걸 왜 배우고 있는 건가요?" 어떤 날벼락이 떨어질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용기 내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숫자를 엉겁결에 말한 그 친구를 노려보지 않고 "괜찮아!"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이 시킨다고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숫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세는 것이 자연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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