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분신

놀이터에서의 대화

안개 낀 저녁 무렵.. 천국을 선물 받다.

by Far away from

8개월 된 둘째의 육아와 틀어져버린 재무설계의 안타까움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이 내 정신을 지배하던 37살 늦겨울의 일요일 저녁 무렵.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가 7살 첫째 아들의 등쌀에 못 이겨 놀이터로 끌려 나갔다.


장난 삼아 시작한 그네를 타며 서로 발을 부딪히며 하는 장난 놀이를 ‘발싸움’이라 명명하였는데 민재는 그 놀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발싸움을 하고, 또 좌회전 우회전을 자꾸 헷갈려하는 민재를 위해 로봇이 되어 민재의 지시에 움직이며 한참을 놀다가 대화가 시작되었다.



‘민재야, 아빠는 민재가 아빠 핸드폰 너무 많이 보고 그러면 민재 눈이 나빠져서 초등학교 다니는 진서 형아처럼 안경을 쓰게 될까 봐 무서워.’


‘아빠, 초등학교 다음엔 어떻게 되는데?’


단단히 훈계를 하려고 마음먹은 후에 말을 돌리는 아이가 괘씸한 생각이 들어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한다.



‘응? 그다음엔 중학교에 들어가지. 민재야 그게 아니고..’


‘아빠 중학교 다음엔 어떻게 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3년 공부를 하고, 대학교 큰 형아가 되지.. 경민이 삼촌처럼 말이야..’


‘대학교 나와선 어떻게 되는데?’


‘응.. 그다음엔 졸업을 하고 아빠처럼 회사원이 되지..’


‘그다음엔?’


건성으로 대답하다 어느덧 집중하게 된다. 민재가 커서 회사원이 되고 성장할 모습들.. 그럴 무렵 난 어떤 모습일까.. 씁쓸하고 아련해진다.



‘아빠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오늘 민재 아빠 친구 결혼식 갔지? 그 형아처럼 결혼을 하는 거야.’


‘결혼하고 나면 어떻게 돼?’


‘민재처럼 이쁜 아기를 낳아서 키우고 또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이 되게 키우겠지’


‘그래? 그다음엔?’


‘아이들이 많이 크고 할아버지 되고.. 더 나이가 들면 하늘나라에 가겠지..’


‘아빠랑 같이?’


‘아.. 아니 아마 아빠는 민재보다 더 먼저 하늘나라에 가있을 거야.. 민재는 한참 지나서 하늘나라에 오겠지..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가게 되니까..’


‘하늘나라는 어떤 곳인데?’


‘아빠도 하늘나라는 잘 모르겠어..’


‘맘마도 먹고, 코 자고 놀기도 하고 그래?’


왠지 나 자신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도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내 자식이 하늘나라에서 코 자고, 놀기도 하고 그럴 것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



‘글쎄...’


‘아빠. 우리 하늘나라 같이 가면 같이 발 싸움하고 놀까?’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막히며, 내가 지금 민재와 나눈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마치 하늘나라에 가기 전날이 된 것처럼 맥이 풀린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걸 겨우 참으며 먼 곳의 주황빛 가로등을 쳐다보며 가슴으로 눈물을 삼킨다.


그 아이가 원하는 발싸움을 지금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는 많이 있는데.. 이것들을 다 피곤한 일중 하나. 나의 쉼을 방해하는 것들로 치부해버리고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려 했던가?


훗날 내가 정말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 어떤 일이 가장 그립고, 가장 아쉽고, 가장 미안하고 고맙고 소중할까.. 더 못 벌었던 돈도 아니고, 더 못 배운 학업도 아니고.. 아쉽게 놓쳤던 성공의 기회도 아닐 것이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과 기분 좋게 웃으며 놀았던 이 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찬란한 순간임을 깨달으니 회한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민재가 따라오며 왜 우냐고 묻는다.


아마 가장 정답에 가까운 대답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영원히 너와 헤어지기 싫고 이대로 같이 너와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하지만 그런 내 본연의 마음을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너의 말로 인해 깨닫게 되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고마워서..’


일 것이다.


청년 때부터 계속되어왔던 고민과 방황. 내가 지금 이 순간보다 값진 것들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의 연속이었고, 때문에 항상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하려 했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정보를 탐색했다.


하지만 오늘 난 정답을 보았다.


소중한 사람과 진정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사후세계에서까지 함께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그보다 더 값진 시간이 있을까?


내 몸의 수분이 다 눈물 이었나 보다. 민재와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새벽녘까지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오늘 자랑스러운 내 아들 민재는 내가 찾고 있는 아내와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서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대한 정답을 알려줬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내 삶의 멘토가 바로 민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지속적으로 주고 있다.



'정말. 사랑한다 민재야. 그리고. 아빤 정말 너와의 이별은 생각하기도 버거울 만큼 끔찍한 일이야. 어렸을 적 부모님과 떨어질까 불안했던 것의 연장선상에 네가 있었구나. 우리 함께 오래오래 같이 있을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노력하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歸天) 중.



P.S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키보드 옆에는 민재가 그토록 나와 함께 보길 바랬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같이 본 적이 없는 민재의 유치원 음악회 영상이 담긴 USB 메모리와 그토록 카톡을 하고 그토록 영상통화를 했지만 진정성 있게 통화하거나 카톡을 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못난 주인을 닮은 내 핸드폰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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