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Winston
잠자고 있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듯한 선율.
듣고만 있어도 무척 특별한 곳에 우뚝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음악.
내게 이 음반은 그렇게 각인되었고, 그런 시간들의 깊이를 머금고 들을 때마다 더욱 특별해지는 음악이다.
내가 이 음악을 처음 들었던 때는 아마도 중학교 때로 기억된다.
음악을 하는 고모의 딸이 있었는데 명절 때 선물로 가져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외딴곳으로 보이는 곳에 눈이 가득 쌓여있고,
그 눈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자작나무들이 몇 그루 서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숲이 있고, 따뜻하게 번진 느낌이 마치 마을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레코드판으로 선물 받았던 이 음반을 들으며 그 배경 사진을 하염없이 봤던 기억이 난다.
혼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가끔 다들 들어가서 자거나 집을 비웠을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첫곡(Thanksgiving)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은 약간 밝은 느낌의 곡이었는데 그 밝아지는 느낌이 너무 아쉬웠다.
더 깊은 어둠과 더 극심한 추위 속으로 파묻히고 싶은 마음에 첫 번째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곤 했다.
성인이 된 후에 조지 윈스턴의 내한공연을 보았다.
이렇게 섬세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아름다운 곡선과 손을 가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물은 정 반대였다.
무척 크고 무뚝뚝한 라인을 가진 할아버지에 가까운 사람이 무뚝뚝하게 연주를 하였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의 그 넓은 공간을 꽉 채운 피아노 선율은 나의 과거, 현재, 미래 속에서 날갯짓하며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맑은 영혼을 마음껏 춤추게 했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는 힘은 무엇일까?
그 음악을 듣고 형상 없는 공간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던 나의 유년기의 삶과 지금의 삶 중 더 값지다 말할 수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무척 어두웠고, 아팠고, 아는 사람도 많이 없고 돈도 없었지만,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에 감사했고, 들을 수 있는 한곡 노래에 세상을 품었던 그때..
무척 밝아졌고, 많이 아프지 않아졌고,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돈도 많아졌고, 읽고자 하는 책을 언제든지 사 볼 수 있지만 세상에서 배타적인 느낌을 받고 있는 지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와버린 것 같은 느낌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의 내가 낯설다.
아마도..
공연장에서 피아노를 치던 조지 윈스턴도 할아버지가 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낯설겠지?
상실과 변화의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접할 때..
신기하고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