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Good Bye 승연

모든 것은 다시 제 자리로..

by Far away from

나에겐 17살 여자아이 처조카가 있다.

와이프와 교제와 결혼생활을 합치면 12년쯤 되니.. 그 아이를 알게 된 것은 5살 때쯤 된 것 같다.

교제한지 2~3년 이후부터 왕래가 활발했던 것 같으니 그 아이를 본격적으로 알아간 것은 지금의 민재 나이인 듯하다.


사춘기를 지나, 지금은 성인 느낌이 물씬 나는 멋있는 숙녀가 된 승연이란 이름의 그 아이.

대견하다. 잘 자라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응원하고, 항상 가까이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승연이가 이번 캠핑 때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예전과는 달리 캠핑장에 늦게 혼자 오고.. 둘째 날은 혼자 노을 카페 2층으로 잠적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깜짝 놀라 찾아다니곤 했다. 세 번째 날은 마침내 다음부턴 캠핑을 오지 않을 거란 얘기까지 하게 된다.


사람이란 어떤 계기로든 한 번의 상실을 경험하고 나서야 그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마련이다. 승연이가 납치된 게 아닐까 정신이 아득해져 삼색 슬리퍼를 신고 빗물을 튀겨가며 정신없이 찾아다닐 때 신기하게도 머릿속에선

승연이와의 추억들의 책장이 분주하게 넘어가고 있다.


'승연아, 다음에 올 때는 네가 좋아할 만한 보드게임을 사 오고, 네가 좋아할 만한 센 술도 사 올게. 캠핑 안 온단 말하지 마라 응?'


승연이를 방치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예전의 승연이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으로 말을 해보지만, 승연이는 예전의 미소를 닮아있지만 왠지 모르게 아득히 먼 곳에서 웃고 있는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아낀다.


어렸을 때의 승연이는 눈이 크고 밤톨이처럼 너무 예쁜 아이였다.

승연이를 보며 딸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었고, 피아노를 잘 칠 것 같은 고급스러운 외모는 아이이지만 동경하는 마음을 가질 정도로 매력이 있었다.


처갓집에 갈 때에는 승연이와 노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더 자라면서 안마를 해주기도 했고,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는 여성 인권 성장에 대해서 토론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빠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려줄 때는 승연이가 선생님 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캠핑을 가서 엄마 아빠는 싫어하셨겠지만, 이모부가 주는 보드카 칵테일을 홀짝홀짝 먹으면서 취해서 혀가 꼬기이고 했고, 하지만 현재 승연이의 세계와 승연이의 남성관에 대해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어느 세상을 살아가든 우리에겐 우리보다 앞선 인생을 살아가는 선배들이 있고,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이 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승연이를 키우고 계신 처형과 큰 형님을 볼 때 나의 미래가 투영되고, 현재 그분들이 느낄 쓸쓸함과 내가 미래에 똑같이 느낄 상실감이 복합적으로 마음속에서 결정이 되어 맺힌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찾고 다시 이별하고..

모든 존재는 그 관계만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날개가 다 마르고 나면 알지 못하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듯이 우리가 타인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시한부이다.


'승연아,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잘못되지 말고.. 변화는 다 받아들일 테니 캠핑은 같이 다녀주면 안 될까?'


아니라고.. 다를 거라고.. 예전의 느낌을 다시 찾고자 몸부림 쳐보지만, 결국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잘 자라야 하고, 잘 자라는데에서 오는 쓸쓸함과 상실감은 묵묵히 견뎌야 한다.


20살 차이. 큰딸과 같은 느낌의 승연이의 폭풍 같은 성장과정에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별과 안녕이란 인사를 해야겠지만 감수성 강한 인간으로서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찾은 승연이. 안녕? 그리고 안녕..


IMG_1778.JPG <가장 오래된 사진을 뒤지다 발견한 2009년 9살 승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또 한번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