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의 괴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익숙한 어둠이 찾아왔다
난 한때 그것을 친구로 인정하기로 했었지만
그리 만나고 싶었던 친구는 아니었는지
그의 느닷없는 방문에 화들짝 놀랐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가
무엇보다도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주위에서 모르게 하고 싶은 마음에
거친 어둠 앞에 혼자 우뚝 선다
위기 땐 항상 지켜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여러 번 꾸었던 꿈을 되새기듯이
난 하얗게 불타 재만 남았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무사했다
심장을 가둬놓은 그릇이 점점 작아지는 듯
쿵쾅거리는 심장이 옥죄어오고
뇌는 기능을 상실한 듯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상상만을 반복하며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도한다
왜 다시 찾아왔는지
내 삶에서 사라져 줄 순 없는 건지
자주 바랬던 바람과
현실에 대한 야속함을 떠올리다 보니
또 하릴없이 시간은 가고 빛이 가득 들어찬다
어둠은 반복되며
날 그저 꿈에 젖어 살 수 없게 하지만
어쩌면 삶이 그런 걸
그 때문에 난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을 보다 전투적으로 지키며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