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발견의 새로운 전기
얼마전에 지인이 선물해준 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의 사랑'을 읽었다.
책의 메인 문구가 최근에 내가 가슴에 새기고 살고 있는 문구여서 더 쉽게 몰입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문구는 다름아닌 '완벽히 이해할 순 없지만 완벽히 사랑 할 순 있다'라는 말.
흐르는 강물처럼의 명대사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그 책의 여러가지 문구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문구가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자부심도 열등감에서 나온다' 라는 말..
나는 어렸을때부터 '한'이 많았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태열이 심하고 그 태열이 아토피로 발전하여 한참 예민하고 마음이 자라야 할 시기에 아픔을 혼자 견뎌야 하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그 아픔을 숨기는데까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갈라지고 거친 피부를 숨기느라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선호했고, 몸이 더 더워지면 피부가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난 내 몸이 아픈것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다.
나보다 남들을 더 의식했고, 심지어는 피부가 좋을수만 있다면 기꺼이 다른 병을 감당하겠노라고 기도 하기도 했다.
어린 나는 마치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나를 더 내 안에 가둬야만 했다.
그런 내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혼자서 책을 읽고 상상하고, 내가 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경험들을 간접경험하면서 또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그 자아는 무척 건강하고 자부심 강한 자아로 성장시켰던 것 같다.
혜민스님의 문구를 보고 눈앞에 섬광이 번뜩이듯 한대 맞은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나를 내안에 가두고, 그 가둬진 자아를 무척 지혜롭고 성숙하고 건강한 자아로 만들고자 했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 와이프를 만나고 피부도 어느정도 좋아지게 되면서부터 그 자아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의 자아에 있어서 자부심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은 반대급부가 존재한다. 때리는 사람은 학대받았던 기억이, 지나치게 성격이 급한 사람은 삶의 어떤 요인들로 인해 독촉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다면 반대급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혹은 큰 장점이 보인다면 그 장점이 생기게 된 요인이나 배경등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막연히 장점만 있는 사람은 있을수 없겠지만 조금은 성숙한 자세로 내면탐구를 하고 나와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범인과는 다를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떤것도 배척하지 말기를..
종교가 다른 사람도, 성향이 다르고 인종이 다른 사람도, 짧은 세상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마음이 약해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쉽게 다치는 사람도, 남에게 습관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도, 극악 무도해 보이는 사람도.. 모두 자아속에 반대급부를 가진 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