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아직도옥수수를전자레인지에데우는법을알지못한다

by Far away from

나의 생일은 9월 9일이다.

그 가을 초입에 내 생일이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무언가 특별한 생각들이 많이 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특성과 9라는 숫자의 상징성.

꽉 차 있으면서 뭔가 궁지에 몰린 것 같은 그 숫자의 집합이 좋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은 특별했고, 좋아하는 숫자 9, 좋아하는 계절 가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턱대고 떠나는 여정에 대한 만족감 등. 나라는 인간의 도발적 성향에 상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새로운 것, 새로운 곳, 새로운 책, 새로운 취미 등..

항상 새로운 것들은 나를 좀 더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살게 했다.

선물을 할 때도 새로운 것, 남들이 하지 않은 것, 좀 더 상징성 있는 것을 찾느라 남들보다 수십 배는 더 고민하고 사는 것이 당연했다.

여행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도 그 여정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가지러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세상을 어렵게 산다고 비난했고, 누군가는 깊이를 알지 못한 채 함께 했으며, 또 누군가는 이런 나의 노력과 그에 따른 가치를 알아준다.

후자가 지금 나의 반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임은 내게 행운임이 분명하다.


살면서 잘 한 것들을 손에 꼽으라면 내가 나로서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

공황장애로 수능을 제정신으로 치르지 못했지만 그리 망치지 않은 것.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한 것. 그에 따라 민재 민서를 낳은 것.

인생의 조력자들을 만난 것. 배드민턴을 시작한 것 등..

소소한 것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굵게 기억나는 것들이다.


그중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잘한 것들이 가끔은 상충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나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나를 나의 인생의 반려자 와이프가 비난할 때이다.

그럴 때가 잦지는 않지만, 그리고 내가 잘못하여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럴 때면 불행하단 감정이 들곤 한다.


삶에 해답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만의 주문을 외우며 그런 순간들을 버티곤 한다.


'인생은 어차피 진흙탕. 나 혼자 고귀하게 살 수는 없다.'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식과 좋은 것들만 보고 살고 싶겠지만, 나는 가끔 삶의 밑바닥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을 보고 더럽고 냄새나는 장소에서 삶의 본질을 느끼곤 한다.


씻지 않고 자연스럽게 있다 보면 누구에게나 노숙자 냄새가 날 수 있으니 그건 우리의 냄새이기도 하고, 우리가 고귀하게 칼질하여 먹는 음식도 오래 놔두면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냄새가 나니 그건 우리가 먹는 음식물의 냄새와 같은 것이다. 결국 고귀한 것과 더러운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항상 긴장하며 살게 만드는 생각이 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집에 살인자가 살 수도 있고, 바로 윗집에서 누군가가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으며, 바로 밑에 집에서 누군가가 삶을 마감하며 회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굉장히 아늑하고 보호되는 장소에서 만수무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위험과 삶의 근본적인 굴레들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급재로 들을 하나하나 넣다 보면 짬뽕탕이 되고 개밥과 다를 게 없듯이 그 아무리 좋고 고귀한 것들도 섞여 돌아가면 결국 진흙탕이나 매한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데운다.

이미 한번 삶아 보관했던 옥수수이기 때문에 데우기만 하면 먹기 좋으리라 상상한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을 데워도 꼭 차가운 부분이 존재한다.

그 부분까지 데우는 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오늘 든 생각이 있다.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말고 찜기에 얹어 다시 쪄서 먹으면 되잖아?'


하지만 번거롭다.


이렇듯 불완전한 내가 얼마큼 완벽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의 성향으로 봤을 때 범인들이 '완벽하다'라는 모습의 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게 난 완벽하다.

실수를 하거나 길을 못 찾거나 실직할 위험이 있거나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면 완벽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냥 나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완벽한 것이다.


요즘에도 가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멍하면서 아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다시 태어나 나 자신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낯설고 삶과 공간이 어색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그래 난 다시 태어난 거야.

구진아. 이번엔 정말 제대로 한번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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