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_2

서산에 지는 태양

by Far away from

무척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에 잠자리가 날아다녔고, 세상 모든것들이 평화롭고 행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 평화가 깨어지는 단발마 같은 비명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소리가 난 장소로 뛰어간다.


'치익.. 치익...'


좀전까지 바삐 울리던 무전기 소리도 비명소리에 겁을 먹은듯 조용하다. 벌써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모여있는 사람들.. 사람들의 움직임만 봐도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작은 사고이거나 부상이면 무척이나 번잡하게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 마치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모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다.


나는 차마 겁이나서 보지 못한다.


'나는 키가 작은거야.. 앞에 사람이 왜이렇게 많이 있지? 오늘따라 눈이 보이지 않네. 아차.. 할일도 참 많았는데...'


나 자신에게 갖은 핑계를 대며 참혹할거라 생각되는 그곳을 난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던 순간 어렴풋이 한 단어가 작지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엄마...'


사고였다. 노가다를 하면서 처음 접해본. 사망사고였다. 고층에서 작업을 하던 작업자는 발이 미끄러져 낙하물 방지망을 뚫고 또 뚫고.. 아래로 떨어져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유명을 달리 하였다.


그 차가운 노가다 현장에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날카로운 철근에 찔려 땀과 먼지투성이 옷을 입고 마지막 흘린 말은 '엄마..' 였다.


순간 난 머리를 누군가가 큰 망치로 때린듯이 멍해지며 귀에선 삐 소리가 들렸다. 내가 관리하는 작업자는 아니었지만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체조를 하며 함께 웃으며 농담을 하고, 내가 앞에서 지시한 지적구호를 함께 제창했던.. 나의 말에 반응하고 나에게 눈빛을 줬던 나와 함께 했던 존재였다.


자괴감도 아닌것이. 죄책감도 아닌것이. 두려움도 아닌것이. 공포도 아닌것이. 걸르고 걸르고 거르다보니 아무 감정조차 남지 않아버리고 삶의 무게도 이유도 느껴지지 않는 무중력 상태. 그 상태로 난 내 자신이 증발해 버린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가다.

삶과 죽음이 있고, 살기 위해 죽어야 하고 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모순같은 삶이 알몸으로 노출되어 있는 곳. 그 곳에서 나의 첫 경험은 너무나 쓰고 너무나 아팠다.



'오늘 점심은 뭐 나올까?'

'몰라~ 대충 순대 채우는거지뭐~ 노가다 뭐 있냐? 대충 먹고 살자~~'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들의 말. 익숙함 속의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는다.


'별아~ 오늘 뭐해? 너 이번에도 안전 꼴찌했다매? 잘좀 해라~ 안전 차장한테 밥을 사든가~'


밉상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한. 헷갈리는 캐릭터. 이믿음 과장님은 나를 위해주는것 같으면서도 디스를 하고 다니는 아주 신비로운 캐릭터이다.


'내가 해봤는데 핫건은 98도의 열로 물체를 가열하기 때문에 위험작업 허가서의 화기 항목으로 분류하여 작업을 하여야하며....'


옆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항상 완벽한 한미팽 과장님.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은 철저히 외면하는 캐릭터.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완벽한 상황을 살다가 최후를 맞이하겠지..


나도 옳고 너도 옳고.. 모두가 옳은 이곳. 모두가 옳아 자유로워 보이지만 순간의 사고로 모든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는 이곳. 첫사고의 아픔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이곳. 그렇기 때문에 노가다의 안전에는 예외가 없다. 안전 꼴찌를 하더라도 묵묵히 나의 안전을 실천하며.. 어리고 순수할수록 사슴같은 눈망울로 큰 사고에 쉽게 노출되어버리는.. 나의 대학교 알바하던 모습의 아이들을 절실히 지켜야만 하는 이곳. 그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 이름도 찬란한 노가다. 그 본질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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