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_6

서른 즈음에

by Far away from

새벽달을 보고 출근했다가 새벽달을 보고 퇴근하는 노가다의 일상.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어두운 하늘과 더 밀접할 수 있는 직업인데 왜 하늘의 별과 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노가다인들에게 어둠이란 잊기 위한 시간.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한 시간일 것이다. 잊고 떨쳐내야 또 하루를 담을 수 있는.. 고되고 고된 일상.


나의 첫번째 사수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힘든일에는 말이야.. 술을 먹어서 해결되는 일이 있고, 이야기로 풀어서 해결될 일이 있으며,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해결되는 일도 있어. 내가 지금 힘든것이 어떻게 해야 해결될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말을 남기신것을 보면 우리의 인연도 그리 소모적인것만은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흘러가고 있던 나의 서른즈음 어느날. 여느날과 같았던 아파트 준공 무렵의 어느날이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현장을 순찰돌던 나는 전기실에서 이상한 탄내가 나는걸 발견하였다. 그때당시에 첫번째 사수가 그만두고 두번째 사수인 김거성 과장님이 왔던 상황이라 서둘러 보고를 했다.


'김거성 과장님!! 큰일 났습니다! 전기실에서 탄내가 나요!'


현장을 돌아보던 우리는 소방 관련 장비를 돌려주던 MCC판넬에 열화가 있어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맨탈붕괴에 빠지게 되었다.


'준공을 앞두고 이런일이라니...'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김거성 과장님은 차분하게 해야 할것들을 노트에 적고 있었다.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은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논리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해결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판넬업체와 판넬안의 부속자재 업체에까지 일일히 전화를 하여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는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관철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노가다는 이런것이구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절대적인 노력.. 안되면 되게하라. 되는것도 되게하라. 어느 상황에서도 긍정을 잃지 마라..'


그때 배운 그 느낌은 내 두번째 직장 생활에서도 고스란히 가치관으로 이어졌으며, 그런 김거성 과장님의 태도는 지금에서도 전혀 변함이 없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것. 마치 고대 맘모스처럼 그 FM을 실현하고 있는 실존인물이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고는 김거성 과장님의 치밀하고 끈질긴 대처덕분에 말도안되게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오히려 그 일이 있은 후 나를 위로하며 작은 선물까지 주신 김거성 과장님. 직장의 멘토라기보단 삶의 맨토라고 하는게 맞는 표현같다.


'서른이면~ 나도 장가를 갈거라고 생각했지~'

'또 하루 멀어져간다~ 담배연기처럼~~'


김광석과 박상민의 서른시리즈 노래를 정확히 32살까지 즐겨 불렀던것 같다. 만으로 30살이라고 우길수 있는 한계나이. 그 나이에도 30이 넘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자괴감이 들며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엔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지?


그때 기사 5명이 수원대학교 앞의 온돌바닥 노래장에서 만오천원으로 세시간이 넘게 목놓아 부르던 노래들.. 그 시간은 아직 화석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기사시절 노가다의 시름과 한을 떨치려 고된 하루에 땀과 먼지에 젖은 옷과 머리를 흔들어가며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했던 동지들은 이제 모두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노가다를 하고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소띠형아들. 이믿음과장님과 한미팽과장님. 요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장진급 담보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각자 성격이 강한 과장님들인 덕택에 하루하루가 위기같이 보인다.


나이는 어리지만 입사 선배이기도 하고, 프로젝트 다년간 수행했던 입장에서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다. 하지만 조직을 위해서 나이순서대로 진급을 시키는게 옳다고 말했던 소장님의 말처럼 세상엔 따라야 할때와 침묵해야 할때가 있다는것에 동감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고, 또 내 스타일이 옳은것도 아니고, 그들이 내 말을 따를리도 만무하기 때문에..


완벽주의자 한미팽 과장님은 자신의 일이라 생각한 일 이외의 일을 하느라 자신이 피해를 받고 업무과다에 쓰러질 것같다고. 각자도생을 하자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일을 덜어줄때는 한팀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모습이었지만 바뀌는 상황에 따라 변화의 폭이 무척 크다.


삼국지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의 스타일이 있었나 놀랄정도로 수많은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듯 묘사된다. 그중에 마속이란 인물이 생각난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믿을만 하지 못했고 말이 앞서서 주위를 혼란스럽게 했던 인물. 혼자서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무리를 위해서 군율을 빌어 제갈량이 목을 베어 읍참마속이란 사자성어가 생겨났던 인물. 사람이란 상황에 따라 쓰임새에서 벗어나게 되면 탈이 나게 마련인가보다.


'한과장님. 내가 프로젝트 선배로써 하는 말인데.. 지금까지 완벽하다 말할수 있었던건 그정도의 일만을 했기 때문이에요. 더 많은일이 주어지지 않았던건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 일이 넘친다 생각된다고 동료를 버리는게 맞는건가요? 그러면 완벽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마음을 내려놓고. 덕을 쌓아 사람을 믿으세요.. 지금 당신이 힘들다고 무너지려 하는 이 프로젝트는 제가 봐오고 수행했던 프로젝트중에서 가장 수월한 편에 속하는 프로젝트랍니다..'


보내지 못할 문자를 카톡창에 가득 채운후. 입으로 '전송'. 한글자 한글자 지우며 또 한걸음 한걸음.. 내가 걸어야 할 곳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위기때 차분해지는것은 내 변태같은 AB형 피 탓일까. 고통에 겨운 과거탓일까.


오늘은 왠지 말도안되게 구슬프게 불러보고싶다.

2인분같은 1인분~ 이 아닌. 사십즈음에 같은 서른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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