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개진 세상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를 근무하다가 퇴직하신 아버지.
아버지는 중기사업소에서 근무하셨고,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근무를 하셨다. 나와는 분야가 좀 다르긴 하지만 아버지도 노가다였던 것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질문란에 적곤 했던 '회사원' 혹은 '사무직'. 노가다를 빗댄 직업의 항목도 없었고, 있다 해도 그렇게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을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직업은 항상 그냥'회사원'이었다. 생각해보면 돈 버는 시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당했던 전형적인 가장이었던 아버지와 소통할 기회가 많지도 않았고, 어머니에게 구체적으로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도 그냥 '회사원'이라고 얘기해 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무관심하게 시간이 흐르다가 나중에 아버지가 퇴직하고 나서야 우연한 기회로 아버지가 일하던 일터를 찾아가게 된 나는 오랜 무관심에 벌을 받는 듯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쉽게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왜 아버지가 4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해야만 했는지 알만한 외진 곳의 한 공장.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낡고 삭막한 공간의 벽에는 옛날식 안전 문구들이 가득했다.
'안전제일'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그 문구들을 얼마나 제창했을 것이며, 그 기름때 가득한 바닥에 아버지가 흘리셨을 구슬땀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아버지란 이름으로 버티셨을 세월을 생각하니 투정 부리던 날들과 무관심한 날들, 그리고 덕분에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낸 지난날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너무나 무거워 단 한걸음 떼기도 힘들었다. 그 적막함과. 오후 햇살을 받으며 그리고 무겁게 고개를 떨군 내 옆으로 환하게 웃으며 어릴 적 모교를 찾아온 듯 즐거워 보이는 아버지의 환한 미소엔 겹겹이 그늘진 주름살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시를 좋아하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로 시작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앞에서부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외우던 아버지의 모습을 무척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시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아버지에게 노가다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나처럼 일을 했을 것이다. 종종 깨알글씨로 수첩에 글들을 적어가며.. 해외에 있을 땐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하얀색 편지지에 여백도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 어머니에게 보냈던 편지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든 모습들도 지금의 나처럼 고뇌에 차있었을 것이다. 항상 그곳에 있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아버지의 삶은 기계가 움직이듯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에서도 노가다였으며, 집에서도 노가다셨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주말에 집에서 쉬는 날에도 아버지는 몸을 쉬는 일이 많이 없으셨다. 담장 벽에 페인트가 벗겨진 것 같으면 페인트가 뭍은 낡은 옷과 모자를 주섬주섬 챙겨 입으시고 롤러와 붓을 이용하여 페인트를 발랐으며, 화단의 나무 가꾸기, 자동차 수리와 정비, 각종 집안 모든 것의 수리와 지붕에 방수가 깨져 물이 새는 상황에서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보수하기도 하셨다.
하루는 기와를 수리하러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시다가 2층 밑으로 떨어져 엄청 큰 소리를 듣고 뛰쳐나갔던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충격을 받으셨을 텐데도 겸연쩍은 듯 피가 나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벌떡 일어나 다시 일을 하러 올라가시려고 하셨다. 그때 난 너무 놀라고 눈물이 철철 나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무사함에 무척이나 감사함에 세상 모든 것들에 감사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그 무모한 강함이. 숭고함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노가다가. 절대 끝나질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버지의 노가다는 그랬다.
뭉개지고 깨지고 다치고 허물어져도.
살아있는 한 하는 것.
회사를 다니고 안 다니고에 상관없이 아버지의 노가다는 삶에 그대로 묻어서 연속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7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
회사 앞 횡단보도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수많은 노가다들이 길을 건넌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그 풍경이 매일매일 낯설다.
'오늘도 난.. 노가다구나.'
난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혹은 전문직 누군가는. 혹은 가정주부는. 이런 노가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그 누군가는. 절대 볼 수 없을 노가다인들의 러시 타임. 마치 아프리카 어느 초원의 들소 떼의 무리 이동을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나도 안전모를 쓰고, 안전벨트를 차고, 그들과 합세한다.
이 생활을 10년이 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노가다의 정해진 틀들이 낯설고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만큼 내 나름대로 다른 노가다를 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곳에 있고, 같은 생활에 따라 흘러가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과 정신은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나 이외의 그 어떤 존재에게도 무언가를 강요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노가다. 직장생활. 조직생활. 월급쟁이. 그 모든 단어들을 대입한 상황에서 나의 스타일을 고집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뭉개지고 무너지며 또 하루의 시간이 흐른다. 불과 1~2년 전의 나에게 하루란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아주 기분 나쁜 날과 덜 기분 나쁜 날. 퇴근길에 차에서 나는 아주 기분 나쁜 날일 경우엔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위안 삼고, 덜 기분 나쁜 날일 경우엔 그렇게 보낼 수 있었던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 마음이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다. 요즘엔 가끔 기분 좋은 날도 있다. 노가다의 수많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건 나에게 쏟아지는 화살을 대신 맞아주고 많이 맞았을 땐 '아프지?'하며 미소 건네주는 동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쁜 와중에도 나의 어제와 오늘 기분과, 사적인 것 모두에 관심을 가져주는 동료가 있는 것. 10년 노가다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 안에서 예쁘게 굳고 단단해진 보석이 생긴 것이다.
이직 후 낯선 상황.
목받침도 없이 망가진 의자로 점심시간에 잠도 못 자고 불편하게 앉아있던 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
'권 대리~ 점심시간엔 자야지 또 일을 하지~ 여기 이 의자로 바꿔 앉고 편히 자라~'
그때 당시엔 공사과장이었던 이깡따구 소장님.
현재 나의 조직의 수장이자 나와 입사 후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서글서글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성품 탓에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며 조직원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스타일. 하지만 그 안에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논리들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 자리까지 가기까지 여러 가지 판단들과 아픔과 상처와 방황의 시간들이 있었을지는 미루어 짐작하는 바가 크다. 높은 곳에선 더 센 바람이 불고, 더 많은 눈과 비를 맞아야 하며, 더 큰 공포와 추락할 때 더 많이 떨어져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마냥 좋은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