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섭 1집 홀로 된다는 것
1988년이니 내가 9살 때였다.
창3동에서 번1동으로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하는데, 새로 산 전축(옛날에 레코드 플레이어를 전축이라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으로 들을 수 있는 레코드 판을 사러 아버지와 레코드점에 갔다.
아마 그때 아버지는 레코드점 주인에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음악이 뭐요?'라고 묻고 서너 개의 레코드판을 추천받아 구입하셨던 것 같다.
그중 하나인 변진섭 1집 '홀로 된다는 것'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무척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레코드 판에 먼지가 묻으면 음악 재생 중에 치지직 소리가 났었는데, 손으로 닦기도 무서워서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이 했던 기억이 있다.
듣고 또 들어 레코드판이 결국엔 변형되어 버렸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만큼 어린 나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던 노래다.
어렸을 때의 강렬한 기억 중에 아버지와 했던 몇 안 되는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어머니가 줄 수 없는 강한 느낌과 재료들을 아버지는 줄 수 있고, 그 재료로 아버지가 없는 오랜 시간 아들은 몸과 마음이 자라게 된다.
지금 들어도 가슴 뭉클한 노래 '홀로 된다는 것'..
그 이후에 명맥을 이어갔던 발라드나 클래식들은 예민한 나의 마음속 촉수를 매만져줬고, 날 숨 쉬게, 살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
가끔 민재 나이였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던 그때의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 고마워요. 잊지 못할 내 첫 레코드판. '홀로 된다는 것' 잘 들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