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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절대긍정 항상 감사

by Far away from

아마도 10년쯤 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나의 첫 사수(첫 직장의 첫 번째 직속상관을 이르는 말)와 무척이나 닮은 외모로 날 긴장시켰던 걸로 기억난다.


첫 번째 사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를 대리운전기사, 빨래나 청소,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가사도우미쯤으로 여겼으며, 항상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애인과의 밀담용 핸드폰의 명의를 나로 가입하여 매달 요금을 내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하였다.(하물며 요금도 제때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사회생활의 첫 사수였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따라야만 했지만, 불합리한 상황의 지속은 나를 무척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사수로 맞이하게 된 Kiss형님.

닮은 외모였기에 또 학대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다른 인품을 보여주었다.


'본모습은 따로 있을 거야. 노가다판(건설업종을 비하하는 말)에서 이런 인품이 있을 리가 없어.'


라고 생각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나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왔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무척 곤란한 문제가 생겨서 급전이 필요했을 때였는데 그분은 자신의 지갑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꼬깃한 비상금을 꺼내어 선뜻 내게 건넸다.


지갑 속 가득 채워진 지폐 중 하나였다면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분명 꼬깃한 개인의 비상금이었음이 분명한 돈이었다.


그때부터였다.

그분에게만큼은 내 모든 무장을 해제하기로 다짐한 것이..


그 이후에도 계속 내게 호의를 베푸셨고, 그분이 선물로 사주신 캐논 디지컬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아직도 와이프랑의 연애시절의 추억을 담은 채 보관되어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친구와 이야기해봐도 들어보지 못한 이런 사수, 이런 직장동료를 만난 것은 무척 희박한 확률의 행운인 것 같다.


와이프와 알게 된 기간과 비슷한 기간을 알고 지냈지만 오히려 와이프와는 몇 번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kiss형님과는 단 한 번의 트러블도 없었다.


지금 두 번째 직장에서의 인연도 무척 가까운 곳에서 맺어지고 이어져가고 있지만, 그분의 인품 앞에선 모든 문제가 거품처럼 흩어지고 사라진다.


무척 신비로운 능력이다.


그분은 낯선 이의 경계심을 쉽게 해제시키고, 꼭 필요한 정보를 무척 명확한 경로로 쉽게 습득하며, 엄청 느린 컴퓨터로도 모든 업무를 단기간에 정확히 처리하며, 필요한 자료는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며, 모든 보고는 꼭 필요한 부분만 거부감 없이 하여하는 모든 일에 마찰이 적다.


또한 무척 결핍한 상황에서도 불만보단 감사를 가지고 항상 주변인들보다 낮은 자세로 타인을 배려한다.


그런 그분이 얼마 전에 진급자 회식 때 필름이 끊기셨다.

10여 년간 처음 보는 모습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셨던 것 같다.


'구진아.. 미안하고 고마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해'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내게 진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Kiss형님! 형님 같은 전무후무한 인품을 가지신 분이 금전적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그 어떤 부분에서 최상위 class가 되어있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이 잘못된 거라고. 늦은 진급으로 미안하거나 고마워한다고 말하는 거..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다고.'


그리고. 얼마나 큰 인품의 소유자길래 나보다 더 형님을 응원하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보고도 싶었을 것이다.


오전에 길을 걷다가 그분을 표현할 수 있는 한 개의 문장이 떠올랐다.



뭉개진 인성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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