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나 너 그리고 우리..

by Far away from
자아

'그 어느쪽에도 치우침이 없게 해주시고, 수많은 흔들림 속에 정의를 찾게 해주시며, 내 삶의 시작과 끝을 진정한 나로 시작하고 끝맺을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기독교도 불교도 아니지만 시간이 날때마다 기도를 하곤 한다. 알 수 없는 곳을 향한 기도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인지,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의 성격을 가진 독백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나만의 기도를 하게 된다.


그 기도의 성격은 대부분 '온전한 나를 지켜주세요'라는 의미의 것이 많은걸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결코 남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왜 나로써 나라는 존재로 주변의 모든 것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걸까? 삶의 근본적 의미와 실존에 대한 의문이 튀어나올때면 내 정신세계는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끝도 없는 미궁속을 헤매이다 나오고 나서는 어느정도의 정신적 해소감이 들긴 하지만 답이 없는 화두였기 때문에 해답은 찾지 못한 채 또 그렇게 그냥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 겹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좋은 기억 나쁜 기억들과 불가피한 트라우마들이 쌓여 간다.


나는 다리에 어렸을때 데인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언젠간 낫을것 같은 희망을 주듯 어느정도 회복 되기도 하지만, 이내 덧나고 또 덧나기를 반복한다. 아마도 평생을 갖고갈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이 상처처럼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수많은 상처나 흔적들도 결국엔 나의 인연이겠지.


가족1

억척스런 엄마와 회사일밖에 모르는 아빠.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본건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엄마는 8남매중 셋째딸로 어렸을때 집안일에서도 항상 예외가 되었지만 여러가지 좋은 기운들을 끌고 다녔다고 한다. 엄마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좋은일이 생겼기 때문에 자식들 가운데서는 럭키걸로 통했다는 엄마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할때의 엄마는 억척스럽거나 강한 엄마가 아닌 여리고 소녀같은 엄마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곱게 자랐을 엄마. 그녀는 왜 엄마란 이름의 가면으로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 평생을 살아오신걸까?


결혼해서 돈을 벌러 출장이 잦았던 아빠를 대신해서 아빠의 역할까지 대신 해야했던 엄마는 산골마을에 살며 산짐승의 굶주린 울음소리에 무서워도 무섭다는 표현을 하지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식들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기에 강해져야만 했던 엄마. 생존을 위해 사회 일선으로 뛰어나간 아빠를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아빠의 역할까지 해야함에 스스로 강해지고 억척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렁이는 갈대의 움직임에 마음이 동요되었을 엄마는 단으로 묶인 채소가격 100원 200원을 깎는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일밖에 모르는줄 알았던 아빠. 20년동안 한 회사에 다니다 퇴직하신 아빠가 나처럼 감성적이고 여리며 문학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것도.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란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무뚝뚝하고 결과론적인 사람인줄 오해했던 시간은 떨어져 살던 지금이 아닌 같이 살던 시절이었고, 여리고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라는 진실을 보게 된 시간은 같이 살던 때가 아닌 떨어져 살고 나서부터였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촛점이 맞지 않아 오히려 더 자세히 볼 수 없고 어느정도 떨어져야 또렷하게 보인다는 것은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정신적 노안때문에 점점 더 멀리서 봐야 더 잘 보인다는것. 부모라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이해는 없고 수용만이 있었던 오랜 시간이 마치 봉인이 풀리듯 내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야 이해된다. 시간이 마술을 부린걸까? 오랜세월 우리들에게 희생만했던 그들의 시간이 해석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생각만해도 눈물샘이 터져버리는 무척이나 애절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족2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씨. 운동장 모래먼지가 잔뜩 일어나는 가운데에서의 운동회.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


운동장이 떠나갈듯한 함성소리에 미세먼지도 주춤 하는듯 하다.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무엇을 향해 달리는지 모르지만 릴레이 선수로 출전한 아이는 공중을 날아갈것같은 발놀림으로 내달리고, 대표선수로 발탁되었다는 자부심과 남보다 빨리 달렸다는 투쟁심 등이 복합된 듯. 달리고 난 후의 얼굴은 잔뜩 상기된 모습이다. 이제 갓 입학한 새내기라는 입장도 무색하게,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장난을 치며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복잡하다.


많이 컸다는 뿌듯함과 혼자서 잘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애닳는 상실감은 날이 갈수록 평형감각을 상실하겠지만 그래도 부모이기에 평생을 걱정과 자부심으로 살아가겠지. 나의 부모가 그랬던것처럼..


자식을 잉태하기 전에 사람의 몸이 이렇게 부풀수 있는지 알지 못했고, 자식을 낳아보기 전에 내 마음이 이렇게 커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온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되지 않는 육아의 굴레. 99.9프로의 행복감의 핵 위에 0.1프로의 피로,지침의 지각으로 이루어진 행성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회사 책상위에 아들이 써준 편지.


'오늘 힘든일 있었지 응. 나한테 전화해. 내가 도와줄께.'


하루 피로로 뭉친 마음이 사우나를 한듯 풀리곤 한다. 자식의 마법. 무척 힘들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이된다. 과학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유전자의 마법. 부모에게 자식은 마법같은 인연이다.


친구

'친구 잘 사귀어야 해~ 근묵자흑이라고 친구 잘못 사귀면 잘못 되는거 금방이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 항상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아보면 어렵게 사귀었던 그 친구들 다 어디로 갔는지.. 직장과 자식과 아내 외의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당한채 살아가고 있는 일상. 한때 우리의 전부인듯 찬란한 시간들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다 뿔뿔히 흩어져 버리고, 난 녹음기처럼 우리 부모와 마찬가지로 어린 자식들에게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식이란 인연으로 마치 삶에 대해 복습하듯 과거를 투영해서 살고 있는 삶. 아이들이 친구와 사이좋고 놀고 웃고 어깨동무 하는 모습은 나의 유년기를 떠올리게 한다.


노는아이들 소리
저녁 무렵의 교정은
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윤상 가려진 시간 사이로 중..>


유년기의 나는 친구들과 해질녘에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지는 해를 보다보면 하늘색이 신비롭게 변하곤 했다. 오늘은 빨간색.. 오늘는 주황색.. 그리고 신비한 빛의 어둠이 찾아오고, 무척이나 기분좋아지는 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나면 무척이나 호기롭고 행복해지곤 했다. 그리고 나서 친구에게


'나 잡아봐라!'


하고 내달린다. 그런 나를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연인


나의 전부를 다 줄 수 있을만한 존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세상의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예찬하고 있고, 수많은 음악이나 시의 내용은 사랑의 간절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연을 거꾸로하면 연인이요 연인을 거꾸로 하면 인연이 되어버리는. 사랑에 아파하고 행복해하고 불나방처럼 자신을 태울 수 있는 강력한 아드레날린. 어떤이는 사랑에 아파하고 어떤이는 성취감에 뿌듯해 하지만 사랑을 이루고 나서부터가 과정임을 많은 이들이 깨닫는다.


'슬플때나 기쁠때나..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서로를 믿고 사랑하겠습니까'


저런류의 말이 결혼식 주례사의 단골맨트인것은 그만큼 지키기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이 서로의 기준에 맞춰가며 살아가기람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사랑만 보던 불나방 시절을 지나서라면 더더군다나.


억겁의 인연으로 만났다는 것은 억겁의 상처를 견디고 억겁의 허물을 감싸며 억겁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의 다른이름. 그치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사랑을하는 연인의 인연은 아름답다.


직장

'껌 하나 드시겠어요?'


처음 보는 이에게 건내는 껌 하나. 우리는 직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 하나하나를 대수롭지 않은 상투적인 인연으로 생각하기 쉽게 되지만, 우리 개개인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놀랄만큼 신비로운 자아들이다.


나에게 껌을 건내는 어리고 패기 있어 보이는 친구는 아마도 짐작컨데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아들에게 부모님께서 이런말을 건내셨을지 모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언제든 네가 먼저 싹싹하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살아. 뭐 하나 좋은게 있으면 나눠먹고.. 네가 준것보다 더 많이 돌아오게 마련이니까..'


너무도 자명하게 맞는 말이기 때문에 시대가 지나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거란걸 잘 알 수 있는 말. 그런 말을 우리는 '진리' 혹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때론 정확한 업무처리를 요구하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서 변칙과 음모술수가 팽배하다. 우리는 그에 맞서기 위해 가정이나 기타 삶에서 얻은 진실과 진리를 무기삼아 사회생활에 임하기도 한다. 또한 각자 자신만이 가진 인연의 고리로 때론 엮고, 때론 풀면서 복잡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곤 한다. 사회생활의 거대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그간의 모든 인연과 에너지를 소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다양한 모습에서 새로운 인연으로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지구


오랫동안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적색거성 태양을 항성으로 두고, 그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물과 태양빛을 자양분으로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



'아이에게 하늘과 별, 우주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그런 이유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천문학책을 읽게 되었고, 망원경을 사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어린시절 하기 싫은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지구과학이 실존형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아이와 함께 같은 곳을 보고 싶은 욕심때문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별과 은하, 우주와 인연을 맺고 날이 좋을때면 망원경을 들쳐매고 산으로 들로 나가는 우리.. 개개인의 생과 사조차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거대 우주 속에서 인연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저 우주속에는 어떤 생명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아이와 함께 말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과거 상상속 외계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친근한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곤 한다. 미세한 유전자의 차이로 지구의 주도적 생명체가 된 인간처럼 다른 별에 생명체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먼 미래에는 지구별이 아닌 생명체와 인연을 맺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고 돌아 서있는 곳.
바로 그자리였다.
나는 좀더 배웠고..
좀더 많이 경험했으며
좀더 성숙하고 부유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바보처럼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고
그저 그렇게 서 있을수 밖에 없었다.
주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인들의 향기가 너무 달콤하였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부모님의 눈빛이
너무 따사로웠기 때문이다..
<자작시 인연 중>


인연이란 무엇일까? 태어나 생존을 위해 울고 웃기를 반복하다가 자아가 형성되고, 가족의 품에서 자라다가 친구를 만나 호기로움도 부려보고.. 연인을 만나 사랑을 하여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게 되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지구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속의 수많은 인연들. 평화로운 나날이 마냥 지속될것 같지만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많은 기적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생각하면 순간도 헛되게 보내선 안될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들곤 한다.


5월 가정의 달.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이 계절이면 유독 오픈카들의 모습이 도로에 눈에 띈다. 그만큼 맑고 따뜻한 날씨는 주변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날씨인듯 하다. 하지만 이제 날씨보다 먼저 찾아보게 되는 미세먼지 수치. 향후엔 창문에 공기필터가 달린 아파트들의 분양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농담삼아 이야기 하다보니 정말 허무맹랑한 소리인것 같지는 않아 마음이 씁쓸하다.


우리가 하루를 살며 관계를 맺게 되는 수많은 것들.. 때론 힘들고 때론 지치고.. 생각치도 못한 시련에 모든걸 놔버리고 싶은 절망감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걸 귀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인연에 있다. 어머니가 사랑으로 차려주신 포슬포슬 감자와 무에 양념이 깊게 배어 밑에 깔려있는 고등어찜을 얼마나 먹었으며, 다정한 연인의 손길과 체리같은 아이의 입술뽀뽀를 얼마나 받았던 우리인가?


존재는 인연으로 소중해지고, 소중한것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2017년 5월의 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소명대로 인연을 맺고 소중함을 간직한 채 그 인연의 향에 심취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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