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고목에 열매가 열렸다
매년 맺는 열매지만 한해한해 왜그리 사연이 많은지..
올해는 처음보는 벌레가 수많은 가지를 갉아먹기도 했고, 병충해로 수많은 잎사귀가 이그러졌다.
태풍으로 맺은 열매중 태반이 떨어졌고, 작년에 썩어간 허리부분 밑둥 통증때문에 하루도 편할날이 없었다.
내쪽으로 기울어져 자라던 옆 나무를 친구라 생각하고 품었더니 나의 줄기를 옥죄이는 담쟁이덩굴이라 숨을 쉬기 힘들어지고.. 날 외롭지 않게 해주었던 개미 친구들은 먹을게 없는지 나의 수액과 열매과즙을 먹고 심지어 내 밑둥을 파서 집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난 여느때처럼 열매를 맺었고, 대지에 깊은 뿌리를 깊숙히 박은 채 굳게 서있다.
친구로 믿었던 존재들은 결국 자신이 유리하게 나를 이용했고, 그런 세상 모든 존재가 어우러져 사는 삶이 하나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열매가 싹을 터. 어린 나의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오래된 고목인 나는 세상에 대해 그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었다.
내 가지는 굵어지고, 뿌리는 더 깊어졌으며 크고 힘이 세졌지만, 커지는만큼 더 쎈 햇빛에 내 살을 노출시켜야 했으며, 더 많은 주변 존재들로 인해 간섭을 받아야 했으며, 단 한해도 수월하거나 마냥 행복한 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 내 쥬니어나무에게 무언가를 조언해 줄 수 있어야 했기때문에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배를 만들기 위해 좋은 나무를 찾아다니고있던 선장을 끌어드려 배가 되는데 성공했고, 드넓은 바다로의 항해를 앞두고 있었다.
기러기는 감히 나의 곁으로 오지 못한채 주변을 서성이며 울부짖고 있었으며, 거센 파도도 오랜세월 다져진 나의 몸뚱이로 만든 선체에 흠집을 낼 수 없었다. 오랜 세월 같은자리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이유가 이 순간을 위해서였던것처럼 신나고 즐거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저 멀리서 거센 태풍이 몰아쳐 왔다. 태풍은 모든것을 집어삼킬듯이 몰아쳤다. 거센 파도는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용인하지 않을것처럼 엄청났다. 그 시간을 겨우 버틴 후. 쪽빛하늘과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쪽빛 하늘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불쑥 내밀며 묻는다.
'행복하니?'
나는 무엇에 홀린듯 멍하게 쳐다보다가 통곡하듯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몰아치는 태풍.. 그치만 울부짖는 나에게 거센 태풍은 먼 나라의 이야기인듯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태풍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아까 그 아이가 다시 불쑥 나와 묻는다.
'누군가가 보고 싶구나?'
나는 울음을 그칠 새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연신 끄덕이다가 꿈에서 깬다.
아래에는 작은 주니어 나무가 내 밑에서 쌔근쌔근 단잠을 자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수십년간 일상을 보냈던 그 공간. 날 힘들게 했던 수많은 존재들. 그 존재들이 날 휘감고, 나에게 기어오르고, 혹은 내 가지와 잎사귀를 똑같이 좀먹고 있었다.
'훗.. 꿈이었잖아..'
새벽 별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새벽 공기는 청명했다.
꿈을 꾸고 난 후 난 깨달았다.
내가 더 커졌기 때문에 이 많은 존재들을 다 품을 수 있음을.. 매년 반복되는 시련들은 내가 더 커져서 더 많은걸 품을 수 있게 만드는 축복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