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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랑

by Far away from

1991년 늦은 가을.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노래가 발매되었다. 그 때 당시에 12살이었던 나에게 그 구슬픈 노래가 얼마나 가슴속 깊숙히 들어왔던지 그 노래를 한번이라도 더 듣기 위해서 간절하게 찾아다녔다. 부모님에게 학교에 필요한 학용품 사달라는 이야기 꺼내기도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신승훈의 음반을 사달라고 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절박한 선택은 집전화로 음악을 들려주는 ARS서비스에 전화를 해서 듣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통에 얼마의 돈이 나오겠지만 부모님께서 모르시겠지.. 생각하며 큰 죄를 저지르듯이 숨죽이며 통화하며 음악을 들었던 시간..


어리고 힘이 없는 시절 타인에 의해서, 혹은 나 자신에 의해서 가둬져버린 틀 속의 나에게는 해방구가 필요했다. 그런류의 일탈.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다를 수 있는 거리에 있던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읽는 것 등 내가 사용할 수 없는 자원인 돈과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인 운동능력, 시간등을 활용해 할 수 있는 모든것들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내게는 가능 불가능의 여부는 돈이 드느냐 안드느냐 였다. 내가 원하지만 돈이 들지 않는 일은 내게 그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했던 소심한 일탈. 보이지 않는 사랑을 전화로 듣는 행위.. 내 가치관에 맞지 않았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전화해서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 지금 당장 절실하게 너무너무 듣고 싶어서.


지금 나는 그때보다 많이 자랐고, 돈도 많아졌고, 모든게 나아졌지만. 그렇게 절실하게 지금 당장 나를 미치게 설레게 해 움직일수밖에 할 수 있는게 있을까? 돈이 많아진것이 잘못된걸까. 나이가 들어버린게 잘못된걸까.


2017년의 보이지 않는 사랑. 그 노래를 들으면 옛기억이 되살아 나는것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물이란 증거.


적어도 난. 설레일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사람. 그때의 내가 정해놓은 한계를 깼던것처럼. 언젠가부터 그러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한계를 깨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척 위험하고. 어쩌면 모든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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