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의 생존
'뭐야? 이번달엔 아예 통채로 월급이 안들어왔어? 지난달엔 50프로 지지난달은 70프로.. 이제 갈때까지 갔구만??'
사람들은 월급이 들어오지 않은 월급 통장을 빤히 쳐다보며 그달 매꿔야 할 카드값 걱정에 한숨을 몰아 쉬었다.
그 사건을 전후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했다. 짤린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 이직을 결심한 사람도 있었고, 이 업종이 질린다고 업종을 갈아탄 사람도 있었다. 같은 곳에서 같이 생활하며 지냈지만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 틀렸고, 그 생각하는 바는 회사상황이 안좋아지거나 개인의 삶의 형태가 변했을때, 그 약해진 틈을 타고 선택으로 표출되기 마련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기사 5총사. 누가 뭐랄것도 없이 한명의 퇴사를 시작으로 불과 1~2년만에 5명이 모두 퇴사를 하게 되었다. 같은 건설업종으로 가더라도 직종이 틀려졌고, 업무의 형태가 틀려졌다. 결국 완전히 같은 위치로 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임마 마셔임마~ 오늘 날밤 새서 마시는거야?'
오랜만에 만난 기사5총사. 초저녁의 약속과는 달리 하나둘씩 핑계를 대며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도 그 핑계를 대는 무리중 하나. 결국 부산에서 올라온 기사1기 선배만이 궁시렁대며 막차 기차를 타거나 고속 버스를 타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곤 하는 변해버린 만남.. 전에는 밤새 노래를 부르며 혹은 숙소에서 여운이 가실때까지 치킨에 맥주를 먹으며 24시간을 함께 했던 살붙이 같던 동료이지만 '생존'이란 이름으로 각각 선택한 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만남은 짧고, 아쉬워졌다.
자랑스럽든 아니든 나의 첫회사. 첫회사라는 상징성은 그 어떤 것에도 비할바가 아닌것 같지만.. 그렇게 알싸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추억으로 남게 된다. 처음 입사하여 살아남기 위해 노래방에서 재롱을 부리며 주접을 떨어야만 했던 처절했던 생존의 기억과, 후배에게 진급이 밀려 처참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궈야 했던 참담했던 기억과 1년에 단 3일만 연차를 쓰고 주말까지 반납하며 근무했던 맹목적인 근무의 기억과, 군대처럼 복종해야만 했던 선후배 들의 기억을 뒤로한채.
모든 자연의 섭리가 그렇듯이 생존에 있어 장난은 없다.
이직 후 첫 사수인 나와 20살이 넘게 차이났던 권달프차장님.
'뭐든 다 해야한대이. 전기든 제어든 공무든. 네가 다 한다 생각으로 해라~'
인자한 미소를 하며 했던 그 말에 나는 어금니 꽉 깨물고 전투에 임하듯 업무에 임했고, 직종의 변경으로 무척이나 걱정했던 것과 상반되게 주변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지금은 멀리 떨어진 한 소장님께서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너 무슨 사기 패치쓰냐? 뭔 일을 이렇게 잘해.'
그리고 처음에 날 갈구며 내가 상신하는 서류는 무척 꼼꼼히 검토하던 공무과장이 내가 상신한 서류를 검토조차 하지 않고 결재하며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어차피 다 잘 하시잖아요. 그냥 진행 하세요.'
거꾸로 돌아보면 내 생존의 원동력은 '믿음' 이었던 것 같다. 일의 분배보다는 믿어주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몇배를 발휘하는..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생존으로써의 만남과 이별은 늘상 존재한다.
노가다에서의 생존은 만남과 이별이다. 만남과 이별의 주기가 다른 직업보다 더 빨리 돌아오는 특성상 현장이동으로써의 이별도 잦고, 퇴사로써의 이별도 잦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줬던 권달프 차장님이 암수술을 하고 난 다음해였던것 같다. 회사 정책으로써 퇴사를 제안하고, 권달프 차장님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퇴사 절차는 진행되었다. 퇴사가 결정되고 난 후 말수가 적어지시고 힘없고 무기력하게 대화에 있어서 자꾸 핀트가 어긋나시던 그 모습이 기억난다. 권달프 차장님은 퇴사할때도 멋지실 줄 알았는데.. 퇴사하는 그날까지 그 어떤 인상깊은 멋진 조언은 해주지 않은 채 이 말만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셨다.
'악착같이 붙어있으라~ 살아남는게 이기는거라~'
허무한 약속들인걸 알면서도 권달프 차장님은 재직중에 내게 많은 것들을 약속하셨고, 건강과 직장을 다 잃고 떠나는 모습에서 그 약속들은 내게 전혀 채무관계가 될 수가 없었다. 단지.. 아들같은 입장에서 그분이 걱정되고, 염려되고, 때로는 그립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떠났다. 처음 입사할때 날 안내하러 나왔던 김뿔테 사원. 발주처에서 이직해 와서 우리회사 임원진에게도 총애를 받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퇴사절차를 밟게 되신 김총애차장님, 테니스 코치급 실력으로 러브콜 받고 입사했다가 몇년 되지 않아 퇴사 절차를 밟은 주코치 선임, 내 전 직장 동료로 소개시켜 들어왔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총대를 매고 퇴사하게 된 김선량 선임. 등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이별하고를 겪었다.
생존에 있어 만남과 이별과 아픔과 탄식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만남과 이별의 순간에도 남일 보듯이 하는 감정은 들지 않는다. 언제든지 내가 떠나는 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가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또 다른 현재도 감사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생존의 기본 자세이다.
가끔 퇴근하는 길에 수원의 연화장이라는 장례식장 옆을 지나곤 한다. 그 옆을 지날때는 항상 밤하늘에 향냄새가 진동하곤 한다. 어떤 날은 하늘의 별이 총총 보이고, 어느날은 흐리고, 또 어느날은 비가 올때도 있다. 그 어떤 날씨더라도 경건해지는 그 곳을 지날때면 난 그 모든 생존과 생존의 마감을 어우르는 애도를 표하곤 한다.
'살아서 끊임없이 변해야 했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세상의 모든 삶에 가슴 깊이 애도를..'
다시 아침이 되면 노가다의 시계는 돌아가고, 영원히 일할것 같은, 영원히 함께할것 같은 분위기 속에 또 누군가는 조용히 이별을 고하고 남아있는 이들은 폭탄주를 기울이며 떠들썩한 웃음 허공에 흩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