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응답하라 1980)

내몸에 새긴 기억들

by Far away from

활짝 연 창문을 통해 바람소리가 음악소리와 합쳐져 들려온다. 아침의 차분한 햇살이 그 바람소리조차 음악의 하나로 들리게 하고.. 평소같으면 '본론'인 음악을 듣는 행위를 방해하는 바람소리를 '소음'이라고 인식했을텐데 오늘은 훌륭한 반주로 생각하게 한다.


윤상.

아직까지 내 동심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그의 과거 음악들. 과거 시기별로 수많은 경험을 하며 들었던 음악들을 현재에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축복이다. 결국... 흔해빠진 사랑이야기라는 노래가 2000년의 청년시절의 나로 도움닫기를 할 수 있게 하고.. 윤상의 1집은 날 초등학교 시절로 넓이뛰기를 할 수 있게 한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은 또 하나씩 둘씩 다른 기억들로 채워지고.. 이유없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에 청춘. 그 파랗고 찬란한 이름으로 모아 놓을 수 있는 기억들을 가지런히 정렬해 보고싶은 생각이 든다.


내 몸에 새긴 기억들.

나의 몸엔 수많은 상처가 나고. 났고. 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히 회복되고. 어떤 상처는 흉터가 나지만 생활에 불편함을 주지 않기때문에 흉측하더라도 애써 위안하며 잊으며 살고. 또 어떤 상처는 끊임없이 덧나고 아프기를 반복하면서 그 상처의 기억을 잊혀지지 않게 한다.


그중의 가장 후자의 상처.

나의 왼발등에 새겨진 불에 데인 자국.

초등학교시절 미역국을 데워서 상까지 옮기는 중에 잘못 엎어 양말 신은 발 위에 쏟아 생긴 상처. 그때 가장 가까운 소파에서는 그때 당시에 우리집에서 살았던 둘째외삼촌이 신문을 보고 있었고, 부모님은 멀리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아이의 단발마같은 비명소리를 듣고도 힐끔 보고는 신문을 계속 보고 계셨던 삼촌. 발이 뜨거운데 양말을 벗고 찬물을 부어야 하는지. 찬물을 붓고 양말을 벗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했던 나는 골든타임을 흐지부지 혼자 갈등하며 보낸 채 살이 형편없이 뭉그러지고 말았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혼자라는 생각을 할때가 많지만, 그 때 나는 처절하게 느꼈던 것 같다.


'혼자구나.'


뒤늦게 뛰어오신 어머니의 도움으로 상처를 어느정도 정리 했지만 상태는 거의 최악이었던것 같다. 몇개월을 엄마 등에 엎혀서 학교에 등교하였고, 몇년동안은 크게 덧나고 아프고의 반복이었던것 같다. 물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곳의 피부는 낫고 덧나고를 반복하면서 면역력 잃은 피부와 더불어 마음 또한 면역력을 잃어버렸다.


그때의 삼촌의 눈빛을 기억한다. 아마 이런 정도의 메세지를 내게 전해줬던것 같다.


'신문보는데 별일도 아닌데 시끄럽게 하고 있어.'


그 후로 그 삼촌과는 친인척간에 떨어질 수 있는 최대거리의 간격을 유지한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한'이란 것은 참 무서운것 같다.


한참동안이나 장마가 지속되었던것 같다. 힘든일에 보상이 찾아온다는 만고의 진리는 날씨에서 비롯된 것인듯 쪽빛 하늘과 예쁜 솜털구름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지만 숨막히는 공기는 세상에 완벽한 만족은 없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알려주는 듯하다.


2009년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겨울.

그해 봄 결혼을 앞둔 나에게 큰 사고는 예고도 불길한 예감도 없이 찾아왔다. 직장동료와 이동길에 난 대형 교통사고. 그때까지 교통사고는 내가 잘하면 절대 나지 않는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을 바로잡아주기로도 하는 듯 완벽히 문제없는 내 운전에도 큰 사고는 찾아왔다. 중앙선 화단을 넘어 날라온 1차선 충돌사고. 그때당시에 60킬로 이상으로 주행중이었기 때문에 상대편 차량의 속도까지 합치면 최소 120킬로 이상으로 부딪힌 정면 충돌. 너무 빠른 시간 준비없이 난 사고로 순간 정신을 잃은듯 했고. 드라마속 영혼이 이탈하여 죽은 신체를 보는 장면처럼 난 문을 열고 나와 내가 몰던 차량이 처참하게 뭉게진 모습과 119차량과 견인차등이 어지럽게 둘러싸인 곳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충돌 순간 굉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귓속에 삐~하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다행히도 내 옆에 나와 입속의 피를 끊임없이 뱉어내는 내 직장동료를 통해 내가 죽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래저래 만져보는 내 몸은 감각이 없었고, 어딘가를 크게 다쳤더라도 지금은 아픔이나 감각이 없겠구나.. 라는 직관적인 판단이 드는 순간 살았지만 안심할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를 알아봐준 119구급요원은 우리를 구급차에 실으려 했고, 야속하게도 구급차에 앞서 우리에게 사인을 받으려 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견인 동의서를 받으러 온 견인차 기사였다. 뭐가 뭔지도 모를 사고 당사자였던 우리에게 그 이후에도 끊임없는 결정과 냉철한 판단을 요구했던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들은 우리에게 처참한 사고 이후 몸과 마음이 안정할 수 있는 시간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상대편 보험사는 끊임없이 우리의 상태를 감시했고, 입원했던 3차 병원의 원장은 보험사와 한편인듯 우리를 끊임없이 빨리 퇴원하고 합의하라는 등의 압박 아닌 압박을 했던것 같다. 그 안에 모든 판단은 우리에게 맡긴 채 싸늘한 이해관계에서의 강요의 검을 쥔 인간들의 칼춤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끼던 칼로스 차량의 처참한 파손.

연식과 차종으로 값을 책정하고 돈을 주고 차를 쉽게 폐차하면 된다고 설명하는 보험사 직원 앞에.

아끼던 차가 똥차값을 받고 사라져야한다는 사실앞에.

돈을 떠나서 애정을 듬뿍 담았던 차량과의 헤어짐이 더 슬펐던 나에게 나 외의 그 모든 사람들은 나의 정서와는 정 반대의 일처리만을 강요했다. 그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 모든 것들이 꿈이길 바랬고, 시간이 지나 그 모든 기억이 잊혀지길 바랬고, 다시는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알아버린 진실. 알고 있었지만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실들. 세상을 따뜻하게 살고 싶은 내게 '그건 욕심이야'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건들. 나 하나쯤은 어떻게 되도 되는데 내가 지키고싶은 진실과 정의만큼은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내게 '그건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속에 나는 내 몸에 새긴 수많은 기억에도 소멸되지 않은 내 자신을 내보인다.


과거에 수없이 내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던 상처들.

시종일관 모범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초등학교 방과후 학습을 한두번 빠지고 친구들과 밖에서 놀았던 것이 발각된 나에게 '거지같은놈. 내가 너 그럴줄 알았어'라고 말하던 선생님. 다음날 학교에 불려오신 어머니가 내게 때리던 매보다 더 아팠던건 선생님의 그 말. 테두리를 벗어나면 독화살처럼 차갑게 날라오는 타인의 말. 그것들이 두렵다는 이유로 울타리 안으로 안으로.. 더 들어오려 했던 나의 삶. 나의 능력이나 가치관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 사회적 규범이나 남이 싫어하지 않을 일인지에 먼저 관심을 가졌던 나의 '착한아이 컴플렉스'..


생활기록부에는 온통 '내성적. 내성적.. 내성적...'

몸이 아프고 마음이 다쳤던 아이가 내성적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성적'이라고 썼던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였을텐데. 실로 그들은 날 그렇게 좋게 평가해주지 않았던것 같다.


사회 부조리. 갇혀버린 현실. 착한아이 컴플렉스. 과거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 나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


그것들의 기억을 덕지덕지 붙이고 사는 나의 무거운 하루가 또 지나간다. 청춘의 하루가. 먼 훗날 이어질 수 없을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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