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을 가진 이가 낙하산을 탈 때의 자세
수많은 인파가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단풍으로 유명한 곳들을 찾아간다.
실로 그 많은 사람들이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석하긴 무리가 있을텐데.. 이성적인 사람조차 '아름다움'이라는 막연한 감성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풍이란 지극히 사회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 그 본 가지에서 잎사귀를 털어내기 위한 과정일 뿐인데.. 회사 생활로 따지면 퇴직 하기 바로 직전에 칭송하며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로 세상의 많은 아름다움들이 소멸 전 절박함에서 비롯되곤 한다. 종족 번식을 위해 이성에 끌리는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었듯이, 그 소멸 전 절박함에서 비롯된 '아름답다'라는 느낌 또한 하늘이 교묘하게 심어놓은 삶의 코드가 아닌가 싶다.
K는 자신의 고소공포증을 숨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화제를 돌리곤 하였다. 하지만 숨기거나 외면한다고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부터는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에 화제를 맡기곤 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과연 내가 낙하산을 타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절망과 공포속에 휘감겨 있을 그 감정이 두려워. 두려움은 마치 떼어내려고 하면 더 달라붙는 진득한 액체처럼 하물며 무의식 속에도 잠재하여 꿈속에서도 악몽을 만들어내곤 한다.
외면하려 하지만 외면하지 못하는 진실. 삶은 무척이나 많은 그런 조각들이 내제되어 있으며, 삶의 근본 또한 '소멸'이라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의 큰 틀로 이루어져 있다.
무척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지만, 그러다 잠깐의 빈 시간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공허한 마음이 든다. 마치 여행 가방에 짐을 가득 쑤셔 넣었지만 조금 더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가방을 닫지도 열지도 못하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그 시간의 공백을 사용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나의 몸과 마음속에 스스로가 가지는 속박, 굴레, 죄책감, 조바심,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짧은 시간을 풍미하고 사라지는 단풍을 더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겨울이라는 긴 긴 계절을 맞이하기 전 찬란한 그 무언가를 보고 안식을 찾고자 함인지도 모른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많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별 볼것도 없는 산기슭에 모여 셔텨를 눌러대고, 무척이나 절묘한 타이밍에 왔다는 마음에 웃음지으며 행복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