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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 away from Mar 10. 2018

뭐하고 있니?

2005.03.10cy

사람이 가득 들어찬 동대문 운동장역..

당고개로 향하는 만원 지하철을 한대 보내고 나서 다음 전철을 기다린다.

제법 앞에 줄서있던 내가 뒤로 물러서는걸 보고 사람들은 이상한듯 쳐다본다.

하지만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잠깐.. 이내 무심하게 돌아서 차에 올라타 버린다.

사람이 더 몰려들것이 무서웠던지 전철의 문은 금새 닫히고 강한 바람을 남기며 정류장을 떠난다.

다음전철은 빨리 올것이다.

연착된후 다음의 전철은 빨리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빈 자리는 없을것이다.

운이좋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옆 손잡이가 있는 자리를 차지할수 있을 뿐이다.

전철을 탄다.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혜화역에서 여고생쯤 되보이는 소녀들이 탄 이후로 시끌벅쩍해진다.

그들의 소음이 싫지 않다.

덜 다듬어진 그들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저쪽 자리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아마 동창쯤 되리라.

오늘은 감기기운이 있어서 아무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가서 아는체를 하고 싶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코맹맹이 소리를 들려주고 싶진 않다.

콧속에 가득 들어차있던 콧물을 훌쩍거려본다.

안된다..

다시금 흘러내리는 콧물에 좌절한다.

오늘은 아무래도 말을 걸수가 없을것 같다.

수유역에서 내렸다.

역을 빠져나오니 검은 먹구름이 그득 들어차있다.

비도 간간히 내린다.

우산을 쓰려다 이내 포기해버린다.

하늘과 나 사이를 우산으로 막는것은 답답한일이 아닐수 없다.

걸어오는 길에 오늘도 역시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제 당분간 볼수없을 붕어빵과..

새로 튀겨놓은듯 바구리 가득 쌓여있는 오징어 튀김

2덩이에 3천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파는 바나나와

탐스러워보이는 각종 과일들..

근처 시장에서 도매로 팔고 있을 떡볶이용 떡을 사갈까?

다시 흘러내리는 콧물에 이내 포기하고 만다.

돌아오는길에 무엇을 생각했는지 크게 웃어버렸다.

'너 지금 왜이렇게 굳어있니?'

보슬보슬 보슬비가 부들부들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말하는듯 하다

순간 내 마음은 보다 먼곳에 맞닿아 버린다.

저 높은 산과.. 곧게 뻗은 나무와.. 수 세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 허구의 위인들을 아득히 그리워하며 나 자신도 보다 고상한 것으로 치장하고 싶어진다.

잘할수 있지?

잘할수 있지?

잘할수 있지?

오늘..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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