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분신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by Far away from

어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민재가 유튜브로 한 노래를 틀었다. 낯익은 멜로디이지만 어떤 노래인지 몰랐던 딱 그런 노래였다.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라는 제목의 노래란 걸 민재의 말을 듣고나서야 알았는데.. 나오는 영상과 멜로디가 왠지 나를 그 노래를 처음 접했던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데려다 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내가 느끼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내용이었지만, 맑고 청아한 멜로디의 동요였고, 그 동요를 듣고 이야기 하는 민재의 눈동자 또한 맑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목소리는 밝고 유쾌했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죽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밝게 받아들이는구나..' 생각하다가 이내 생각이 바뀐다.


'오히려 그 주제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그런 민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먼 훗날 나의 죽음 뒤에 누군가 나에 대해 이야기 할때 이렇게 밝게 웃으며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어둡고, 말하기 꺼려지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 뒤에 그 존재는 정말 입에서 사라지고.. 결국 마음에서도 쉽게 사라지는게 아닐까.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졌을 이 동요처럼 맑고 청아하게 날 그리며 웃으며, 귀엽다 말하고, 쉽게 어두워지거나 쓸쓸해지지 않을 수 있다면.. 죽어서도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나, 무언가를 잘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보통 많이 가르쳐주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지식의 얕고 깊음은 창의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능숙하게 잘 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많이 알고 깊이 알기만을 강요하는 이 사회, 조직, 그 이상의 모든것에 회의감이 든다.


나와 같은 성향의 나의 아이들은 좀 더 행복한 환경과 숨쉴 수 있는 공간과 조직에서 자랐으면..


민재는 얼마전에 학예회 비슷한 행사를 학교에서 했었다. 나 어렸을때는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발표 한다는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는데.. 민재는 그것을 준비하고 행하는 과정에서 전혀 스트레스를 느낄 수 없었다.


이야기 하면서 발견한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맘에 맞는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

'함께 한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듯 한 저 두가지..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운다. 그 때문에 난 육아를 하는 느낌이 아닌, 친구처럼 함께 이야기 하며 그때그때 느끼는 정서들을 공유하는 것이 너무 좋다. 단지, 그들이 현재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내가 제공하고.. 내가 현재 구할 수 없는 것들을 그들에게 받는다. 쉽게 말해 돈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잃어가는 감성과 삶의 근본적인 것들, 순수함 등을 수혈 받는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일까? 그냥 꼰대로 늙어가도 체감할 수 조차 없었겠지. 자신이 돌이 되어가는 줄도 모른채 굳어갔을 것이다. 그 생의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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