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특별해지는 여행
느리게 가는 기차 밖 풍경을 보면 생각도 오래 머문다.
차창 밖 논밭의 풍경들.
어지럽게 놓여있는 농기구와 비닐하우스를 보며 분주했을 어제의 농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멈춰서 있는 포클레인을 보며 무슨 작업을 이어할지 궁금해지고..
잔뜩 서리가 내린 논밭의 풍경을 보며 아직 겨울의 정취를 느낀다.
민재와의 4번째 기차여행.
이제 10살이 된 민재와 40살이 된 내가 떠나지만 단지 숫자가 늘었을 뿐 몇 년 전 첫 기차여행을 떠났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획을 세울 때부터 설레는 감정도 마찬가지이고, 가는 내내 맞잡은 손도 같은 모습이다.
다만 커다란 도전의 자세로 임했던 처음과 이젠 믿는 마음이 커졌고, 더 큰 민재는 혼자서 더 많은걸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의 표현이 분명한 건 여전하지만 인내해야 할 때는 인내해야 한다는 것, 그 인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마음이 좀 더 커졌다.
더 크고 나이가 들면 어떻게 바뀔까?
나는 또 어떻게 변하고, 민재는 어떻게 변할까?
우리 사이는 또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까?
흔히들 얘기한다.
자식농사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없다고..
마음대로 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육아를 함에 있어 임하는 진중한 자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우리 사이가 견고하고 돈독한 가운데 변화하였으면 좋겠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친구들이 더 좋은 시기가 오고, 수많은 경험을 함에 있어 단지 지켜보고 격려해 줘야 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건 잘 알지만 그 안에서 돈독한 믿음과 강한 사랑이 항상 지금처럼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기차는 부산으로 치달으며 달리고, 새벽 5시 45분에 출발한 기차는 어둠을 뚫고 동이 트는 아침까지 힘차게 달린다. 신문을 보다가 과자를 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피곤에 지쳐 잠이 들기도 한다. 부산으로 가는 2시간 20여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말에 귀기울여주며 자연스럽게 스킨십하고 서로에 대해 교감한다.
오산, 평택, 대전, 동대구를 거쳐 경주와 울산까지 지난 열차는 이내 부산역에 도착한다.
'열차 잠시 후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부산.
우리에게 고향처럼 찾게 되는 곳. 한때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만 봐도 별로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산에 왜 이리 빠지게 되었을까?
부산을 처음 왔을 때는 실은 그리 좋은 느낌을 받고 돌아가진 않았다. 인터넷으로 맛집이라고 검색한 집들은 모두 맛이 별로였고, 각종 시장과 공원은 그 어떤 특별한 느낌도 내게 주지 못했다. 운전이 서울보다 더 험하고 난폭해서 식은땀 흘리며 운전해야 했고, 주차공간도 많이 없어서 가는 곳마다 주차난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아들과 단둘이 기차여행을 하면서부터 부산은 내게 그 진실한 속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특별히 맛있진 않지만 부산만의 특별한 정감으로 다가오는 음식점들은 정겨웠고, 부산 사투리를 쓰며 웃는 부산시민들은 친절하고 여유로워 보였으며 정다워 보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큰 욕심 없이 부산에 대해 온전히 향유하고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부산의 긍정적 인식에 크게 작용했다.
이번 여행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계획을 짰다.
새로운 맛집이나 장소에 무분별하게 도전하기보다는 검증된 곳과 새로운 곳을 적절히 조합해서 아들과의 교감에 집중할 수 있을 수 있도록 했다. 특별한 것을 보고 먹는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온전히 너와 내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는 것이 더 특별한 것이니까..
부산역에 내려서 부산역의 절대 맛집 본전 돼지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시켜서 먹는다. 8시 반 오픈이지만 항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가게를 오픈한다는 것을 전에 여행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8시 10분쯤 들어가서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한다. 국밥에 후추와 새우젓을 넣고 부추무침을 듬뿍 넣고 다진 양념을 한 숟가락 넣어서 밥을 말아먹으면 정말 밥도둑이다. 함께 나온 고추, 마늘, 양파를 된장에 찍어서 함께 먹으면 정말 몸과 마음이 하나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민재도 맛있는지 여기 국밥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우리가 아침을 먹고 나온 8시 50분쯤의 시간엔 사람들 줄이 벌써 장난이 아니었다. 아침식사 줄이 이렇게 길 줄이야..
'민재야, 우리 운 정말 좋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이렇게 기다려서 먹을뻔했어~'
'그러게.. 기차가 조금만 늦었어도~ 와~~ 생각만 해도 무섭다~~'
민재와 나는 손을 잡고 부산역 지하철 노선으로 향한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기장 쪽에 위치한 부산 국립 과학관. 전부터 즐겨찾기 해놓은 곳인데 기회가 되지 않아 방문하지 못했던 곳이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한동안 박물관이나 천문대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산역에서 교대역까지 간 후 교대역에서 동해선 철도로 갈아타서 오시리아 역에서 내려서 과학관까지 걸어가야 한다. 아침시간이라 지하철에 자리가 있어서 다행히 앉아서 갔다. 지하철을 타면 민재는 먼저 자리를 맡고 나를 부른다. 그 모습이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혼자만 앉으려 하지 않고 나와 함께 앉고 싶어서 조바심 내는 민재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기 같은 모습과 청소년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나이 10살. 이제 막 10대로 들어선 그 숫자가 너무 간절해서 자꾸 물끄러미 쳐다보게 된다.
누군가가 말했던 것 같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초라하고 낡은 동네로 여행을 하는데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순 없을 것이다.
여행은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고, 나를 나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