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이상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삶은 어쩌면 이상과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여행이나 일탈 속에서 이상을 찾고, 다시 어쩔 수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행위의 반복.
일상과 이상이 일치한다면 무척이나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아무리 좋은 집에 살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주 생활이 되거나 돈벌이 수단이 되어 버리고 나면 돌아가기 싫은 일상이 되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짧았던 1박 2일의 부산 여행. 여행은 시작하기 전 설렘과 끝나갈 때의 아쉬움이 교차된다. 하지만 추구할 이상이 있다는 거.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거. 어쩌면 그게 행복인지도 모른다.
민재와의 부산여행 마지막 날.
토요코인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7시~9시 반까지) 10시에 체크아웃을 한다. 전에 부산여행 경험으로 부산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1시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 출발하는 열차 시간은 12시 45분으로 예약해 놓는다. 그 이유는 10시에 체크아웃하고 1시간 정도 바다 구경을 하다가 여유 있게 부산으로 이동하여 어묵 등을 사고 출발하면 딱 1시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민재와 해운대 바다를 간다. 어제는 바다를 밤에 거닐었기 때문에 민재가 낮에 가는 바다를 보고 싶어 할 것 같았다. 날씨가 다소 쌀쌀하고 먹구름이 군데군데 끼어있어 해님이 고개를 내밀다 들어갔다 하였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없는 아주 쾌적한 날.
파도가 다소 거세다. 파도 끝은 마치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이 가득 낀 채로 해안으로 밀려온다.
'민재야~ 저거 생크림 아니야? 모아 주라~ 아빠 빵 만들게~'
'아 그럴까?'
하면서 정말 거품을 집으려 한다. 하지만 크게 위험하거나 빠질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리란 걸 안다.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만 아이의 성향을 알고 적당히 제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슴속에 지닌 사랑은 동일하더라도 표현하는 언어가 제지하거나 억압하는데 치우쳐져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말 위험한 상황은 막아야 하겠지만 적당한 선에서 부득이하게 하는 실수쯤은 내벼러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도놀이.. 나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찔하다. 파도를 타고 간신히 그것을 피하며 스릴을 즐긴다. 파도가 나오는 속도나 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신발이 흠뻑 젖기 십상이다.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제지하지 않는다. 나도 옆에서 똑같이 하고 있다. 그러다가 오히려 민재보다 내 발이 젖어버린다. 난 그런 아빠다. 오히려 아이보다도 미숙하고 실수가 많은.. 그런 아빠가 아이에게 무엇을 제지할 수 있단 말인가?
민재와 발로 기지를 짓고.. 앞에 일자 모양 방어막을 만든다. 그 앞에 갈매기 모양 방어막을 만들고, 그 앞엔 조개 모양 방파제를 만든다. 파도의 세기에 따라 방어막들이 무너진다. 궁극적으론 기지까지 원래 없던 듯이 사라지고 만다. 애써 지은 기지와 방어막들이 한 번에 사라졌다고 짜증 내지 않는다. 오히려 깔깔대며 웃으며 다시 기지를 짓는다. 아이들의 성취는 그런 것이다. 무엇이든 놀이처럼 힘껏 에너지를 쏟아붓되 무언가 결과물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결과물은 그들의 몸에.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인상 깊은 추억으로, 다시 하고 싶은 놀이거리로 각인되어 남는다.
어른들의 것과 다르다. 어른들은 결과물이 남아야 하고, 그것이 횡 전개되어야 하고, 다시 할 때 데이터로 남아 정리된 그 결과물들로 인해 더 발전하는 성과를 이루어야 한다. 난 아직까지 어른들의 성향을 온전히 닮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의 모든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직급이 높아지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더 높아지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가 서둘러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간절한 이유이다.
민재의 이번 겨울방학은 무척 길다.
하지만 방학은 나 때와는 다르게 해야 할 것들이 즐비하다. 각종 학원들과 수학 숙제. 영어 숙제까지 생겨서 이건 뭐 방학인지 학기 중인지 모를 지경이다. 즐거워야 하는 방학이 이제 3학년밖에 되지 않은 민재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면 맘이 아프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도 방학이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돈을 아끼기 위해 그 무엇도 하지 않았던 나의 방학은 정말 공백이었기 때문에 항상 불안했던 것 같다. 방학이 끝나갈 때 몰아서 했던 탐구생활과 일기 쓰기 등의 숙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치고, 그 외에 하는 것이라곤 자전거 타기, 책 읽기, 음악 듣기, 개미와 놀기, 사색하기 등등.. 불안함은 공교육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이지 한 개인으로써의 방학은 무척이나 풍요로웠던 것 같다. 나 같은 성향에 마음껏 사색하고 자전거 타고 많은 풍경과 사람들을 볼 수 있었으니..
민재와 둘이 하는 부산 여행은 그런 민재에게 잠시 마나 해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목적도 있다. 점점 커져가는 스트레스와 여러 가지 압박감을 작은 몸으로 얼마나 간신히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11시가 가까이 되었다. 이제 출발해야 한다.
'민재야 이제 갈까?'
민재는 쿨하게 동의한다.
'그래~'
어느 정도 해소가 된 것이리라. 아이들은 순수하고 정확하다. 부족한 감정들을 어느 정도 채워주고 나면 순수한 그 본모습대로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채찍질하고 서둘러 감정들을 추스르라고 독촉하는 것일까?
민재와 해운대 역으로 걸어가는 발걸음.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애써 가져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졸지에 또 짐꾼이 되었다. 자기가 든다 해놓고선.. 어느 순간 나 몰라라!!
가는 길에 포켓 스탑도 돌리고 체육관에서 싸움도 한다. 이 거리 이 곳의 느낌은 민재에게 어떤 느낌으로 각인될까? 포켓 스탑이 있던 곳. 싸움장에서 싸움해서 이겼던 곳.
그 어떤 것이라 해도 괜찮다. 이 곳을 기억하고. 나와의 기억을 간직하는 수단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괜찮겠지. 요즘 아이들의 문화와 관습을 애써 우리의 것으로 강요하진 말아야지. 다짐한다.
이내 부산역에 도착한다. 잠시 지하철에서 서서 갔지만 전처럼 짜증 내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의젓해 보였는지 노약자석 앞에 서있던 민재에게 한 할아버지가 옆에 앉으라고 이야기해주신다.
와이프 심부름으로 삼진어묵에서 어묵을 산다. 삼진어묵은 부산역 1층에 테이크아웃점이 있고, 외부에 삼진어묵 광장점이 있다. 우리는 1층 테이크아웃점에서 어묵을 산다. 전에 2층에 있을 땐 줄을 서서 샀었는데.. 지금 1층으로 내려온 후엔 사람이 많이 없다. 사람이란 간사해서 그 맛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을 읽었는지. 아니면 민재 말대로 우리가 금 사람이라서 그런지. 우리 뒤로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와서 어묵을 산다.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다른 사람이 사가기 전에 얼른 더 사가야지!'
라는 생각이 오히려 들 정도로..
민재와의 이번 부산여행.
건강한 모습으로 소중한 것들을 또 가득 담아서 돌아간다. 고깃배에 고기를 가득 실은 만선 어부의 심정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마치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어린아이의 발걸음처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