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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하숙생 Oct 13. 2021

한국에서 은퇴한 어느 미국인 친구

See you soon, Art!

나는 아직 창창한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엔 40대, 50대 뿐만 아니라 30대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단어가 바로 “은퇴준비”가 아닐까 싶다. 원하는 나이까지 열심히 일하고 아름답게 은퇴하고 은퇴후에 편안하게 노후를 즐기는 것, 누구나 꿈꾸는 일이 아닌가. 나도 어렴풋하게 은퇴후의 삶에 대한 상상을 해본적이 있긴 하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실감이 되질 않는다. 한 달 전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메일알람이 울렸다.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온 이메일 변경 통보 메일이다. 사실 이런 류의 이메일은 근무하던 회사를 떠나거나 은퇴를 앞두고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내 예상대로 역시 그랬다. 한국에 있는 친구라고 했지만 그는 미국인이고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보다 20살쯤은 더 나이가 많은 굳이 한국식으로 호칭을 정하자면 어르신이다. 한국에서 국제학교 교장으로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우연히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일한게 벌써 15년이 넘었으니 너무 흔한 말이지만 시간이 쏜살같다는 말 외에는 나의 체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세월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가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의 국제클리닉에 온 인연으로, 유독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감이 넘쳤던 그가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알고 지내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에 가끔 만나서 식사하고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그가 내가 지금 미국에서 또다른 도전을 하는 데 많은 격려를 해주었고 동기부여가 되었으니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은 그의 경험이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설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도 그를 알고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만나서 5분 정도가 지나면 영어로는 더이상 할말이 없어서 뻘쭘했던 나에게, 아마도 보통 사람이라면 적잖이 답답했을텐데 한번도 짜증내는 기색없이 대화를 이끌어가고 3-4시간 동안 즐겁게 시간을 보낼수 있게 해준건 아마도 다양한 지역과 그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일했던 그의 오랜 경험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때문이었으리라. 그가 애리조나 투산에 살다가 직장때문에 아내와 떨어져 한국에서 십수년을 보냈다는 것도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그의 얘길 들어보면 그는 남미의 몇몇 나라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고 대단히 위험한 상황도 겪었다면서 들려준 얘기를 보면 대단한 모험심과 에너지, 그리고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짐작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도 20년을 산 나보다 더 많은 맛집을 알고 교통지옥에 운전하기도 만만치 않은 서울시내를 기꺼이 나와 아내를 태워서 데려간 그가 참 고마웠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고마운 정도가 아니라 대단하다고 표현하는게 오히려 더 적절해 보인다. 주로 한식에만 길들여져있는 나를 이태원으로 데려가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의 세계로 인도해 준것도 바로 그였다. 애리조나에서 미술품 컬렉션을 하는 그의 아내, Mary는 일년에 한두번 한국에 왔고 그 역시 방학 또는 연휴가 길 때 미국을 다녀오곤 했는데 그의 아내가 한국에 왔을땐 나와 내 아내는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여러번 갖기도 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보다 가까운 외국인 친구였다. 그 덕분에 누가 가라고 등떠밀어도 가지 않았던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음악연주회를 감상하기도 했고 미국 워싱턴주에서 베이커리를 하시던 분이 이태원에 차린 베이커리에서 처음 맛보는 파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걸어서 10여분 정도 거리에 한강이 있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나가보질 않았는데 그가 연락한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등에 땀이 날 정도로 자전거를 탔던 기억도 있다. 소소하지만 재미있게 산다는게 이런 건가,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라는 좋은 표본을 보여주는 듯해서 그를 만나는 내내 즐거웠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는데 한번은 한글을 공부하겠노라고 교재까지 사서 열심히 공부하고 그를 만났는데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을 올릭핌공원에 입차하면서 매표소 직원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해보겠다고 창문을 열고는 "안녕하십니까, 오늘 어떠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길래 어디서 배운거냐고 물어봤더니 학교에서 한국직원에게 "How are you doing today?"를 한국말로 해석해 달라고 했는데 아마 그리 알려줬나보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처음 만나도 그다지 친하지 않아도 그렇게 인사하지만 한국에서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에게 안부를 물어묻고 매표소에서는 그냥 '안녕하세요' 정도면 충분하다고 알려주었더니 그는 누구에게든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다면서 그렇다면 오히려 계속 같은 한국말 인사말을 건네야겠다는 농담섞인 진담을 듣고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있다.   

웃고있지만 미국가기 전 많이 후달릴때라 맷데이먼의 첫대사 "I'm pretty much fuxxed"가 너무 실감난다.

연락처가 직장 이메일에서 개인 이메일로 변경되었으니 아마도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답장을 보냈는데 바빴는지 한동안 회신을 받지 못했다. 소식이 궁금해서 다시 이메일을 보냈더니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의 근황이 담긴 사진 여러장이 첨부된 회신을 받았다. 예전에 그의 아들이 보스턴에서 일한다는 얘길 들어서 혹시 뉴욕이나 보스턴 쪽으로 올 일이 있다면 만날수 있게 연락하라고 했더니 지금 애리조나에 거주하는 집에 게스트하우스를 증축하고 있으니 애리조나에 오면 꼭 들르라는 여전히 유쾌하고 즐거운 그의 답장이 왔다. 3년전에 그랜드캐년을 시작으로 제일 위쪽의 브라이스캐년까지 캐년투어를 할때, 세도나에 갔을때, 아마 그가 살던 곳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일텐데 나중에 애리조나 어디쯤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만 허락한다면 그때 했던 생각이 조만간 현실이 될수도 있겠나 싶다. 한국에 있을때 꽤 여러번 만났었는데 그때 찍었던 사진은 여기저기 흩어지고 한국떠나기 전에 만나서 영화 "마션"을 보고 찍었던 사진이 그나마 가장 최근의 사진이라니 잠깐 연락이 뜸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꽤 오래되었다.  

근처 호수에서 카약을 즐기는 모습

전혀 다른 상황이라 영화를 볼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와 함께 본 영화 '마션' 포스터에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이 오늘은 나에게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반드시 돌아갈 것인지, 그리고 돌아간다면 언제,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그런 걱정을 하기엔 여전히 이 곳에서의 삶이 즐겁고, 더이상 '타지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이르게 느껴진다. 이제는 흔해빠진 광고 카피가 되었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로 그의 은퇴를 응원한다. See you soo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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