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가을

짧은 가을의 어디쯤

by 지구별하숙생

추운 날씨 조심하라고 잔뜩 겁주는 일기예보 덕에 챙겨입은 도톰한 자켓을 따뜻한 낮 햇살에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다 5시 넘어 확 차가워진 공기에 스카프까지 두르고 강동구 어느 빌딩 사이에 앉아있다. 아직 제법 많이 붙어있지만 바닥에 살짝 떨어진 나뭇잎과 여전히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내가 짧은 가을의 대충 한 가운데 쯤 와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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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쌀쌀한 날씨에도 꽁냥꽁냥 어느 한적한 상가 입구 계단에 앉아 첫키스를 하려는지 자꾸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중학생 둘, 2주 후면 무거운 입시의 무게를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가 조금 편안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고등학생들, 추워진 날씨 탓에 조금 이른 성수기를 맞은 호떡집 앞에서 말끔한 정장차림에 시그니쳐 꿀호떡으로 간식삼는 50대 후반 아저씨, 지팡이를 짚고도 시원치 않은 걸음을, 느리게 재촉하며 가는 하얗게 샌 머리가 빽빽한 80대가 훌쩍 넘은 노인, 그리고 일 년 만에 찾은 고국에서 느끼는 낯섦을 지우기 위해 여기저기 적응하려 기웃거리는 나, 모두 여기 짧은 가을의 짧은 순간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가로수를 비추는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며 가을도 저녁을 맞는다. 따뜻한 마실 거리를 찾아 들어간 카페에서 추천한 신메뉴 말차카페라떼보다는 차라리 말차라떼를 마시는 게 나을뻔 했다. 따로 보면 안어울려도 섞어보면 어울리는 것 들이 제법 많은데 말차와 에스프레소는 아무리 우유거품으로 섞어보려고 해도 어울리기 힘든 모양이다. 생태탕 한 그릇이 땡기는 쌀쌀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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