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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10. 2021

[아빠의 문장 #2] 기다림

세상에는 또 두 가지 부류의 아빠가 존재한다. 딸을 원하는 아빠와 딸을 원치 않는 아빠다. 보통 딸 바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면 아들 바보로 불리는 아빠는 그냥 바보로 본다.


나 또한 아들보다 딸을 원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들보다 딸이 예쁘다.(당연한 거다)

둘째, 딸이 더 부르기 쉽다.(한 글자여서)

셋째, 딸은 아파트에서 쿵쿵 뛰지 않는다.(예외는 있다)


이 밖에도 딸이 좋은 이유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거기다 나는 아들을 기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장남이 대를 잇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랫동안 반기를 품고 있었고, 결국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쌍문동 살 때 아내는 첫째와 둘째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둘 다 자연분만으로 내가 곁에 없는 상태에서 출산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내는 지금까지 그 일을 두고 아주 섭섭해 한다. 


대신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의 감동을 나는 공짜로 즐겼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내 핏줄이 생긴다는 설렘만 가득했다. 아내에게 출산은 고통과 희열이지만, 나에게는 기쁨만 존재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가. 요즘은 남편들이 출산의 현장을 함께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쌍문동 단칸방을 나서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병원까지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미역국 끓여놓고 기다리리라.



기다림


당신이 오기 두 시간 전

쌀독에서 퍼낸 김제 동진벼 한 그릇 

얕은 물에 두 손으로 곱게 씻어 놓겠소


한 시간 후 쌀이 불 즈음이면

세 시간 전 불려놓은 완도산 건미역을

냄비에 올리고 멸치육수와 소고기 몇 점

펄펄 끓이다 간장 소금 넣고 간 한번 보고


마지막으로 마늘을 넣는 순간

두 딸을 품에 안고 들어서는 당신

미역보다 더 검은 머리를 가진 딸들,

따스하게 안아주리라


미역처럼 부드럽게

쌍문 미역체처럼 

기다림의 글꼴 선명하게



출산의 고통을 잊으니까 또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종족 번식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고통의 선물'인듯 하다. 십 년 전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잇몸에 나사를 박다가 마취가 풀린 적이 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 고통의 몇 십배가 출산의 고통이라고 한다. 


딸을 원했던 나의 선택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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