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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01. 2021

[아빠의 문장 #18] 훼미리랜드

새천년의 겨울은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 애를 쓴 기간이었다. 새로 온 국장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부서에서 팀장 직책을 맡게 됐다. 아이들과는 경기도 어느 눈썰매장에 다녀오고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초롱이는 아파트 내 유치원에 들어갔다. 유치원에서 도로교통공단 견학도 가고 무슨 왕관을 쓰고 연극을 하기도 했다. 재롱잔치 발표회 동영상을 찍어서 집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오기도 했다.


복실이도 옆 동에 사는 또래 친구와 잘 놀았다. 새로 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복실이와 초롱이는 아파트 곳곳을 휘저으며 다녔다.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주말에 친구 집에서 술 한잔 하고 있을 때 적절한 안줏감이 되었다.


당시 우이동에 훼미리랜드라는 놀이공원이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동네이기도 해서 가끔 가곤 했다. 표를 끊자마자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바람처럼 내달렸다. 회전목마, 우주선 모양의 놀이기구, 범퍼카 등 없는 게 없었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로데오처럼 움직이는 놀이기구를 좋아했다. 마지막에는 항상 무슨 성처럼 꾸민 대형 미끄럼틀에서 놀았다. 바람이 팽팽히 들어간 비닐로 만들어진 미끄럼틀 위를 쉴 새 없이 오르내리다 배가 고파야 내려오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도봉산 입구에 있는 고기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돼지고기를 다시마에 싸서 독특한 젓갈에 싸먹는 곳이었는데 맛집이었다. 열심히 뛰어놀고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훼미리랜드


방생한 물고기가 그보다 빠를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의 눈은 

상하 좌우 180도로 움직이는 어안렌즈다.

이것도 타고 싶고 저것도 타고 싶은데

순서대로 뭘 타야 하는지 몸이 먼저 안다.

로데오와 범퍼카를 타다가 쉬고 싶으면

잠시 회전목마에 앉아 다음 코스를 구상한다.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의 놀이뷔페다.

마지막에는 미끄럼틀을 쉼 없이 오르내리며

입장료를 낸 엄마아빠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집에 돌아갈 때면 어항 속 금붕어처럼 

움직임이 잦아지다가 스르르 눈꺼풀을 덮는다.




'강북의 에버랜드'로 불렸다던 우이동 훼미리랜드는 아이들에게 신나는 추억을 선사하고 2000년대 초반 문을 닫았다. 패밀리보다 훼미리가 더 가족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훼미리랜드 위로 쭉 올라가면 옛날 대학생들 MT 장소로 인기가 많았던 산장들이 있다. 그곳에서 출산한 아내를 위해 백숙을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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