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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Oct 29. 2021

[아빠의 문장 #17] 초롱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첫째는 초롱이, 둘째는 복실이로 이름을 붙여줬다. 그 이름처럼 초롱이는 초롱초롱하게, 복실이는 복실복실하게 잘 자라났다. 


복실이가 책을 거꾸로 읽는 신공을 발휘할 무렵, 초롱이는 동화책을 술술 읽는 마법사가 되었다. 아마 '찾았다' 시리즈로 기억하는데, 숨겨져 있는 사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 그런 내용이다.


"찾았다! 책상 위에 공책, 찾았다! 닭장 안에 병아리, 찾았다! 식탁 옆에 엄마"


나는 이것을 좀 응용해서 실제로 내가 침대 밑이나 문 뒤에 숨었다. 그러면 초롱이가 집안을 수색하면서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침대 밑에 숨어서 아빠를 찾는 아이의 자그만 발을 보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러다 내 웃음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숙여 침대 아래를 들여다 보고는,


"찾았다! 침대 아래 아빠"


또 하나는 '안녕, 잘 잤니' 시리즈로 아침에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화책이다. 


"식탁아 안녕 잘 잤니, 물컵아 안녕 잘 잤니, 나무야 안녕 잘 잤니"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인데, 물컵이란 발음이 잘 안되는 지 항상 "물파바, 안녕 잘 잤니"라고 말하곤 했다. 또 쉬가 마려운 상황인 "급해요 급해"를 "기패요 기패"로 발음하기도 했다. 그러다 실제 응아가 마려우면 "아빠 똥, 아빠 똥"을 외치던 초롱이다.




초롱이


마주치는 모든 이웃에게 인사 잘 하라고

"다람쥐야, 안녕 잘 잤니"

행여 깜박 잊고 이리저리 헤매는 이를 도우라고

"찾았다! 참나무 아래 도토리"


지리산 성삼재 가는 길 옆에

엄마 아빠 초롱이 복실이 순서대로 

종 모양의 꽃을 줄줄이사탕처럼 피운 

아침이슬 머금은 연보라빛 금강초롱



침대 밑에 숨어있다 발각되었을 때,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아이의 초롱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만화영화에서 검은 화면에 눈동자만 좌우로 움직이는 장면이랄까. 그로부터 몇 년 후 우리 네 가족이 지리산을 갔을 때 길섶에 함초롬이 핀 금강초롱을 만났다. 그 사진은 초롱이 육아일기에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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