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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24. 2021

[자서전  편지 #21] 전두환과 진정한 의리

어제 전두환씨가 명을 다하고 세상을 떴다. 흉악범도 검거되면 자신이 암매장한 피해자의 시신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죄의 경중을 떠나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씨는 피해자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지도 않았고, 되레 큰소리를 치며 기고만장했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이런 삶을 살다 갈 수 있을까. 80년대를 산 사람들은 전두환씨를 생각하면 아직도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 중의 하나다. 거기다 나는 제대 말년에 백담사에서 그를 경비하는 일까지 했으니 세상사 참 오묘하다.


백담사 시절에 대해서 전씨가 회고록에 뭐라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본 바로는 호텔 생활을 했다. 외부인과 통제된 첩첩산중 절에서 유배된 것처럼 쇼를 부렸다. 장세동을 비롯한 측근들이 찾아오면 그랜저 몇 대에 나눠타고 인제 시내에 가서 유흥을 즐기고 오곤 했다.


전씨야 논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고, 세간은 장세동씨를 뭐 '의리의 사나이' 어쩌고 저쩌고 한다. 통일민주당 방해사건으로 대신 감옥에 다녀와서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했다는 걸 두고 한 말이다. 과연 그 휴가가 아무 댓가없이 주군을 위해 한 일인가 되묻고 싶다. 그것은 의리가 아니라 '비즈니스'다.


그 당시 장세동이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참 마른 눈물이 날 지경이다. 아마 진시황에 핍박을 당하던 연나라 태자 단과 형가의 얘기에서 줏어다 붙인 것이리라. 하지만 둘 사이의 차원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형가를 노래하다(詠荊軻)

                                                도연명


연나라 태자 단은 무사 기르기 좋아하였으니, 천하의 진시황 없애기 위함이니라.

일당백의 뛰어난 인물 불러모으자, 해 저물 무렵 형경을 얻게 되었다.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느니, 검을 들고서 연나라 서울을 나서리라.

흰말은 넓은 밭길에서 울고, 강개에 넘친 이들 내 떠나는 길 전송 하는구나."


솟아오른 머리털은 높은 갓 떠받치고, 맹렬한 기운은 긴 갓끈 찌른다.

역숫가에서 술 마시며 전송하는데, 자리 마다 뭇 영재들 늘어서 있다.

점리는 비장한 축풍류를 타고, 송의는 목청을 높여 노래부르니,

바람은 쓸쓸하고 슬프고, 물결은 차고 담담하게 일렁인다.


서글픈 가락에 눈물이 샘 솟고, 맑은 소리에 마음이 요동친다.

내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나, 후세에 그 이름 전해지리다.

수레에 올라타서 한번도 뒤 돌아보지 않고, 지붕이 날리도록 진나라 황궁으로 짓쳐들어가니.

힘은 떨쳐 만릿길을 넘고, 큰 길 피해 천 개의 도성을 지나가는도다.


황궁의 지도가 펼쳐지자 명이 절로 닥쳐온지라, 천하의 진시황도 겁에 질려 쩔쩔 맨다.

오호라, 애석타 무사여, 검술이 성기어 그 공을 끝내 이루지 못하였도다.

그 사람 비록 죽었으나, 천년토록 비분강개한 마음 삭지 않을 것이다.



몇 해 전 이연걸 주연의 영화 '영웅'의 배경이기도 한 태자 단과 형가 이야기는 주군을 위한 진정한 충성이 무언지 말해준다. 감히 전두환과 장세동이 낄 자리가 아니다. 한편으론 형가 같은 이가 우리나라에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되레 표를 얻기 위해 전두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던 정치인들의 행태가 더 서글프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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