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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21. 2021

[아빠의 문장 #21] 뭐했지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의정부에서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했다. 부서를 다른 곳으로 배정 받았는데 남들보다 출근이 빨리 해야해서 회사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했다. 이로써 3년 동안의 짧지만 아이들과의 추억이 깊게 남은 의정부와 이별을 해야 했다.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해서 30분간 회의를 하고 8시에 구내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종일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오후 5시에 들어와 마감을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오전에는 전날 벌어진 타사 일들로 깨지고, 오후에는 내일 마감하는 일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술자리가 많았다. 한번은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택시가 안 잡혀서 합승을 하게 됐는데, 차가 밀려서 발을 동동 굴렀다. 회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팀장이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이제 삼청터널 빠져나간다고 하니까 앞자리에 탄 손님이 자기는 내려서 걸어가겠다고 한다. 아마 감사원에 근무하시는 분 같았는데 덕분에 회의시간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회의시간에 늦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회식이 있는 날은 대부분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잠을 자곤 했다.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90년대 서울 홍수 영상을 보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물이 허리까지 찼는데도 가방을 머리에 얹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지어 가는 직장인들. 지금이야 '재택하면 되지' 하고 웃겠지만, 그때는 회사는 지진이 발생해도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학교에 잘 다녔다. 정릉초등학교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등교할 수 있었다. 초롱이는 1학년 2학기부터 정릉에서 시작했고 복실이는 집에서 엄마하고 놀았다.


그해 가을 추석이 지나고 시골에서 쌀을 가지고 올라오는데 중부고속도로가 엄청 막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동안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막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정체가 잠시 풀리기에 속도를 내면서 잠깐 졸았나 보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에 깨어보니 그만 앞차를 박은 것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앞차로 달려가 괜찮은지 물어봤다. 그쪽도 어린 아이가 포함된 가족이 타고 있었다.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데가 없다고 해서 보험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대문 어느 우체국에 다니신다고 했는데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뭐했지


아빠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뭘 하고 있었지

초롱이는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녔는데

복실이는 집에서 뭘하고 놀았나

야후 꾸러기를 하면서 논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손을 잡고 동네산책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안 나네

고슴도치처럼 엄마 곁에 꼭 붙어서 

정릉 숲속을 걸었을거야, 그랬을 거야

아기 다람쥐처럼



 2002년은 정말 다사다난 했던 해였다. 정든 의정부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오고,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느라 애썼다.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에 쩔어서 살았고, 그 사이 아이들이 어떻게 커가는 지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고슴도치 같은 머리는 다람쥐처럼 순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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