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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Nov 26. 2021

[아빠의 문장 #22] 강화행

정릉초등학교 뒤편으로 작은 공원이 있어서 가족들과 종종 나들이를 갔다. 여러가지 운동기구에 올라 몸을 푼 뒤 훌라후프를 누가 오래 돌리나 시합을 했다. 엄마 아빠는 몇번 돌리다 떨어뜨리기 일쑤였는데, 초롱이와 복실이는 아주 잘 돌렸다. 심지어 2개, 3개를 허리에 두르고 먼 산을 바라보며 훌라후프를 했다.


배가 고프면 돗자리를 편 후 싸가지고 온 김밥을 먹었다. 다람쥐들도 혹시 뭐 먹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곤 했다. 산책로 주변에 잣나무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주웠다. 잣나무 송진 향이 좋아서 집에 가져온 후 책상 위에 두기도 했다. 


늦가을에는 김포평야에 가서 들판에 펼쳐진 황금들녘을 바라봤다. 차를 세우고 논에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벼 이삭을 만져보고 메뚜기를 잡았다. 시골에서야 맨날 보는 게 논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보는 감회는 또 남달랐다. 내친 김에 강화도에 가서 고인돌과 외규장각 정조대왕 유물전시전을 관람했다. 방명록에 우리들의 이름을 남겼다.


강화도를 거의 한바퀴 빙 둘러본 후, 전등사 구경을 했다. 소나무를 거의 원형 그대로 대들보로 쓰는 대웅전이 마냥 신기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강화시장에 들러 밴댕이회덮밥을 먹었다. 밴댕이의 질척한 느낌에 쑥갓과 당근의 풍미가 곁들인 늦가을에 한 번쯤 먹어볼 만한 별미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싸돌아다니다 돌아오는 길은 차량 정체로 도로가 꽉 막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어느새 차 안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그 뒤로 붉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강화행


김포평야 황금들녘 메뚜기를 잡고

수로에 앉아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봤다

강을 따라가면 서해의 길목 강화도

전등사 소나무 대들보는 꿈틀꿈틀

도로변 가게 생새우는 파닥파닥

아이들은 코스모스 입에 문 채

훌라후프를 하듯 빙글빙글 춤을 추고

둥근 원 안으로 잦아지는 붉은 태양

어느새 코를 고는 아이들에게서 

늦가을 잣나무 향기가 났다



기억은 참 오묘하다. 과거 어느 지점에 내가 가 있으면 잊혀졌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떠오른다. 정릉 뒷동산에서 시작한 기억여행이 김포를 거쳐 강화까지 나를 이끌게 했다. 아내는 무슨 기억력이 이렇게 좋냐고 하는데, 기억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솟아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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