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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Dec 31. 2021

[자서전편지 #23] 호랑이 발자국 남기는 새해 맞이

나이 오십이 넘으면 시간 가는 것이 화살과 같다더니 맞는 듯 합니다. 소띠해가 어떻고 저떻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요즘은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대신 카톡 등 메신저로 새해 인사를 하는 추세죠. 저도 어제 서둘러 고마운 분들에게 톡을 보내는데 한참 동안 정체가 생기더군요. 교통체증처럼 톡체증이 생긴거겠죠.


내년은 호랑이, 그 중에서도 흑호랑이 해라고 합니다. 백호든 흑호든 호랑이는 용맹을 상징하는 영험한 동물입니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으니 옛날에는 사람들과 충돌이 많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마마와 호환이라고 해서 호랑이로 인한 피해를 나라에서 걱정했을까요.


그런 호랑이가 일제시대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서울과 강원도 등에서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살았나 봅니다. 수컷 호랑이 영역 면적이 대략 1200 제곱키로(서울 면적의 2배 가량)라고 하니 어마어마하죠.


내년에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선택이 있는 해입니다. 부디 호랑이의 기운으로 국운이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운명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손택수 시인의 '호랑이 발자국'을 읽어볼까 합니다.



호랑이 발자국


가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해마다 눈이 내리면 호랑이 발자국과

모양새가 똑같은 신발에 장갑을 끼고

폭설이 내린 강원도 산간지대 어디를

엉금엉금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눈 그친 눈길을 얼마쯤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눈이 내리는 곳 그쯤에서 행적을 감춘

사람인 것도 같고 사람 아닌 것도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남한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이 몰려가고

호랑이 발자국 기사가 점점이 찍힌

일간지가 가정마다 배달되고

금강산에서 왔을까, 아니 백두산일 거야

호사가들의 입에 곶감처럼 오르내리면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이 복고품 유행처럼 번져간다고 치자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만, 오히려 증명할 수 없어서

과연 영험한 짐승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게로군

해마다 번연히 실패할 줄 알면서도

가슴속에 호랑이 발자국 본을 떠오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고 치자 눈과 함께 왔다

눈과 함께 사라지는, 가령

호랑이 발자국 같은 그런 사람이



생각해보면 사람은 평생 반경 40키로 이내에서 생활하다 죽는다고 합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출퇴근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거죠. 코로나로 그마저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요. 그럴수록 사람의 영역은 동물보다 더 넓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사람을 품고 용서하고 같이 살아가는 공존의 마음이 확장되는 임인년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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