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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Dec 16. 2021

[아빠의 문장 #23] 눈썰매

정릉으로 이사를 와서도 아이들은 의정부에서 처럼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보냈다. 미끄럼틀, 그네, 정사각형 사다리를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다. 


한번은 아이들이 시무룩해져 집으로 오길래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오빠들이 괴롭혔다고 한다. 동그랗게 생긴 회전하는 기구를 타는데 남자 아이들이 못 내리게 계속 돌렸다는 것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가보니 아직 녀석들이 놀고 있었다.


대질심문을 해서 범인을 추린 후 머리에 알밤을 한대씩 꾸욱 박아줬다. 그 나이에는 여자에 대한 호기심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겠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 같으면 맞은 애가 집에 가서 이르면 부모끼리 싸움이 날 판이었을 것이다.


정릉에도 겨울이 왔다. 눈이 많이 온 날, 미리 주문해 놓은 눈썰매를 가지고 정릉초등학교 뒷동산으로 갔다. 눈썰매장처럼 경사가 알맞게 되어 있어서 놀기에 딱 좋은 곳이다.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안전을 추구하는 초롱이는 잘 타는데, 복실이 눈썰매는 내려오면서 자꾸 왼쪽으로 쏠리곤 했다. 어렸을 적 신발을 바꿔 신는 버릇이 남아있는 듯 했다. 그렇게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려는 심리 때문인지 커서 미술을 전공하게 되었나 보다.


하긴 아이들이 정릉초등학교로 전학하자 마자 열린 그림대회에서 둘 다 종로구청장 우수상과 장려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정문 담벼락에 초롱이와 복실이 그림이 전시된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눈썰매


아빠 왜 내 썰매는 자꾸 왼쪽으로 가지

복실아, 그럼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서 출발해봐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왼쪽 고랑으로 향하는 눈썰매

그 사이 초롱이 눈썰매는 쏜살같이 휙 지나가고

복실이는 투덜대면서 다시 출발지로 오른다.

어느새 껴입은 스키복은 땀으로 흥건해지자

우리는 솔밭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하고 

내리막길 옆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사람 머리에 솔가지 모자도 씌워줬다.

눈사람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겨울 강물 속으로 서서히 잦아들었다.



정릉에서 산 눈썰매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사하면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다. 아이들과의 추억 중 눈썰매 만한 게 있을까 싶다. 올 겨울에 한번 타러 가 볼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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