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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Jan 14. 2022

[자서전편지 #24] 혹한 이기는 '경주짬뽕과 소나무'

중앙선 열차를 타고 경주 가는 길에 기차가 단양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교각 밑으로 흐르던 강물이 꽁꽁 얼어붙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연일 영하 십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지는 강추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소한 지나 다음주 대한을 넘기고 설을 쇠면 입춘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울음은 강을 만들었다/너에게 가려고"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강물이 언 것도 걸어서 반대편 언덕으로 가라고 한 것이겠죠.


새로 단장한 신경주역에서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경주남산 쪽으로 가는데, 야트막한 산과 능선들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천년역사도 식후경이라. 날도 추운데 짬뽕이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음식 재료도 좋고 맛도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같이 동행하신 선생님께서는 "경주 살면서도 이집은 처음"이라면서 이번주말에 모임을 그곳에서 하겠다고 하십니다. 


점심을 먹고 왕릉 근처에 다다르니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더군요. 끝이 없는 소나무 군락을 보면서 세한도의 송백과는 또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한도의 소나무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개인의 절망과 희망이라면, 경주의 소나무는 그 이상의 것을 떠받치는 강력한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아마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일 수도 있고, 나라와 역사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일 수도 있습니다. 다 같이 안도현 시인을 통해 소나무의 무게를 한번 가늠해 보겠습니다.


독야청청


밤 10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밤 10시부터 소나무는 가지로 눈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늘이나 구름 혹은 어둠을 받쳐들던 손에

쌀밥 같은 눈송이가 소리 없이 내려앉을 때 처음에는

소나무도 손바닥이 간지러웠을 테고 가끔은

솔잎으로 눈송이를 콕콕 찌르며 장난도 쳤을 것이다


우리가 비닐하우스에 쌓이는 눈을 치우느라고

빗자루 들고 밤새 발 구르며 허둥대던 동안에도

눈 쌓이는 소리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을 것이고

그리하여 소나무의 귓불은 두툼해졌을 것이다

한밤중에 늑대가 와서 밑둥치에 오줌을 찍 휘갈기고 간 시간에도

그 뜨뜻하고 세찬 소리에 젖어 꿈쩍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나무의 일생은 눈의 무게가 아니라

세상의 무게를 걱정하는 데 바쳐야 하는 것,

천지간에 석 자도 더 되는 눈이 쌓이고 쌓여도

소나무는 장엄하게 지휘자처럼 팔을 벌리고

폭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하는 것,


그러다가 소나무는 저렇게 끝장을 보고 말았을 것이다

눈을 받쳐들었던 팔이 한순간에 부러지며 허공을 때리고

그때 허공은 크게 한번 쩡, 하고 울었을 것이다

저 소나무가 실패한 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눈을 뭉쳐 당신의 뒤통수를 내갈기고 싶을 것이다

저게 실패라면 당신이나 나나 저렇게 한번 실패해 봐야 하는 것이다 


 


세상 막다른 길까지 갔을 때, 바닥까지 닿았을 때 우리는 소나무를 바라봐야 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손을 벽에 집고서 지나온 길과 하늘을 관조해야 합니다. 밤새 당신 손과 발 위로 하얗게 눈이 쌓이겠지요. 그렇게 한 보름 정도 견디면 손은 가지가 되고, 발은 뿌리가 되어 다시 자라날 것입니다. 봄이 되면 당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 팔을 휘저을테고, 거기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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