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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Dec 05. 2022

숯가마 아줌마군단과 사랑의 불씨착

시골에 카페 짓기8

큰 애와 함께 오랜만에 숯가마에 갔다. 아침 먹고 꿈적거리느라 오전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불가마 앞에 서너 명이 앉아있었다. 그 중 아는 분하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불 앞에 섰다. 


아내와 1주일에 한번은 숯가마를 찾는다.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다고 불평하던 아내도 점차 숯가마의 효능을 알고 나서는 열혈팬이 되었다. 불 앞에 앉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참 각양각색이다. 허리 통증, 관절염부터 각종 암에 이르기까지 치유 사례가 쏟아져 나온다. 


처음에는 나도 미심쩍었지만 계속 다니다 보니 안 좋았던 부위의 통증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게 다 ‘원적외선 효과’라고 한다. 하긴 예전에 부뚜막에서 군불을 때던 우리 어머니들이 부인병이 없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단순히 몸을 데우고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기만 해도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난 것은 단골 아주머니들은 숯가마에 오는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다 꿰고 있다. 누구는 무슨 요일에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오고, 누구는 병 치료를 위해 숯가마 근처로 이사를 왔다는 등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 


어떨 때는 유일한 청일점인 나를 향한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볼라치면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나한테 뭐 하는 사람이냐(젊은 양반이 평일에 숯가마에 오지?), 집이 어디냐, 어디가 아프냐 등을 물어보고 싶은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차가운 얼굴, 날카로운 눈매에 불을 쬐면서 간혹 책이나 인쇄물을 보는 내게 쉽게 접근하는 아주머니들은 없었다. 언젠가 한번 탈의실에서 어떤 중년 아저씨가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라고 하기에 “책 펴낼 원고를 본다”고 답한 게 전부다. 


아마 그 아저씨 입을 통해 이미 숯가마 아줌마 군단에게 내 개인정보가 다 퍼졌을 지도 모른다. 재미난 것은 숯가마에서 일하는 분들의 개인사와 숯가마의 운영현황까지 아줌마들은 다 꿰차고 있다. 이 아줌마 군단에게 기사 쓰는 방법만 조금 알려주면 아마 훌륭한 시민기자가 되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열심히 몸을 지지고 있는데 엊그제 다녀왔던 옥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평당 200만 원짜리 땅에 대해 어떠냐고 물어온 것이다. 나는 돈도 부족하고 땅값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냥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내는 땅 주인의 현재 상태에 대해 뇌피셜을 쏟아냈다. 340평 토지의 구매가격의 절반 가까운 2억 원을 대출을 받았고, 매달 이자만 100만 원 넘게 내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학원이 요즘 예전 같이 잘 안되니 더 기다리면 싸게 살 수도 있다는 바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가격은 제시가격보다 너무 싸니 성사가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일단 마음을 접었다.


점심을 돼지갈비를 먹으려고 혹시 몰라 식당 브레이크 타임이 언제인가 하고 봤더니 오늘 휴무라고 한다. 아쉽게 큰 애와의 돼지갈비 점심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어제 아내와 딸이 만든 스콘에 믹스커피로 추위와 배고픔을 대신했다. 


숯가마에서 많은 사람들이 병을 치유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곳 사장님을 참숯병원 원장님으로 부른다. 그 이후 진료비가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랐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원장님도 그 일을 즐기면서 하는 거 같고, 숯을 다루는 조선족 아저씨도 참 성실하게 일하신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보존해온 데에는 불의 힘이 크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그 큰 성을 움직이는 힘은 불씨에 있다. 참숯병원에도 그런 따스한 불꽃 같은 어떤 연대가 있어서 좋다. 하울과 소피가 그토록 간직하고 싶어했던 사랑의 불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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