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에서
해질녘 찾아간 운조루
툇마루에 앉아 이 집 막내아들과 차를 마시며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뜬금없는 얘기를 나눴다.
노자며 부처며 예수며 수 많은 깨달은 자들
작은 입자에 불과한 것들이 빛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
그러나 깨달음이란 무엇이냐고
뒤란 굵은 산수유나무가 묻는다
마당을 뒤덮은 고만고만한 소소한 나무들이
멋쩍게 바람에 흔들리고만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 있는 것들
자라지 않아도 제 스스로 자라는 것들
날개가 없어도 창공으로 솟구치는 것들
온갖 병을 안고 세상을 떠돌다
이제야 해질 무렵 운조루 툇마루에 앉아
나를 내려놓고 나를 벗어버려야 내가 되고
새가 되고 구름이 되어 자유로이 만나고 흩어지고
끝내 깃털마저 벗어버리고
순간의 영원 속에 나를 맡기고 나서야 지금,
드러누운 사월 보리밭의 싱그러움과
구름 속으로 제 몸을 숨긴 새들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이대로 한 세상 또 흘러가리라
사월 운조루에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