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 등꽃
서울 가는 호남선 상행 열차를 놓치고
역사 밖 등나무 벤치에 앉아
은하수에 막 불을 붙일 때 등꽃이 피었다.
이대로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입영
다음 기차표를 끊으면 2년 교도소행
갓 스무살 청년의 고뇌처럼 등나무는
제 몸을 꼬아 하늘을 찌르고자 했던가.
그때 처음으로 헤아린 줄기의 무게
누군가를 의지해 닿으려는 허무한 종착역,
애들아, 줄기의 마음을 알아 챈 가지는 이내
하강줄을 밤새 밑으로 내렸단다.
담배보다 진한 꽃향기 터널
은하수보다 더 촘촘한 연보라 포도송이
그 안에 살포시 걷어올린 새끼버선들
아소님아 땅에 닿지 마소서
아소님아 하늘도 탐하지 마소서
그냥 그대로 유월의 등나무 벤치가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