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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Jan 15. 2024

상처농사

상처농사


꽃 진 자리에 다시

새싹 돋는다면 나무는 저리

울울창창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낫이 다가오자 벼가

온몸을 내어주는 이유는

한 줌 그루터기로 작아져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이 가려울 때

아내에게 긁어달라고 하지만

긁을수록 가려움의 진원지는 멀어져간다

긁어도 긁어도 번지는 내 안의 상처여


싸락눈 긋는 소리에 붉은머리오목눈이

화살나무 주변을 부지런히 오간다

오매나 눈 속에 드러나는 빨간열매들


세상 모든 과실은 사리처럼

소멸 속에서 싹을 틔우나니

상처난 자리에 씨 뿌려달라고

겨울논은 저렇게 봉두난발 아우성이다


한밤중 속이 쓰릴 때마다

이마를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심안이 있었다던 그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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