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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Feb 04. 2024

되았다는 말

되았다는 말


저녁 짓는 부엌에서

솥단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슬퍼서가 아니라

밥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매운 연기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밥이 다 되았네’ 하시면서

솥뚜껑 열고 부지깽이로 밑불을 뺀다


가뭄 끝 쏟아지는 비를 배불리 먹은

논둑 옆구리가 자꾸만 터지는 것은

우스워서가 아니라

벼가 여물 때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취한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면서도

‘나락이 다 되았네’ 하시면서

삽으로 물꼬를 튼 다음 담배 한 모금 빙그레 빤다


애지중지 키운 첫딸의 손을 사위에게 넘기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등이 활처럼 휜 것은

아쉬워서가 아니라

이제는 보낼 때가 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가장 먼 곳인

좌심방에서 우심방으로 너를 보내기 위해

삼십년 나를 갈아 한 자루 각궁을 만들고도

차마 시위를 달지 못하였으니


밤마다 허공을 가르는

텅 빈 활 쏘는 소리 들리겠다

되았다 되았다 하시던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 말씀

귓전에 한동안 맴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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