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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Jan 07. 2021

좋은 일에 기꺼이 참여하는 용기

미술 봉사단을 만들었다_2


못 갈 이유가 한 가득일 때


봉사단원 모집 공고를 내 걸었지만,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비용도 부담해야 하고, 여행이라곤 하지만 봉사 일정이 상당히 빡빡하게 잡혀 있어서 설렁설렁 놀듯이 하는 봉사와는 전혀 다른, 정말 각 잡고(!) 하는 봉사 일정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도 소규모로 모집할 생각이었지만, 이건 뭐. 지원자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급한 마음에 주변 지인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7명의 지원자가 모였다. 두 명의 일러스트레이터와 다섯 명의 대학생이었다.     


봉사단원들을 만나면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다들 ‘참가하기 힘든’ 사정을 가지고 있었단 사실이다. 다들 봉사하러 가기 위해 힘들게 일정을 조정하고 시간을 냈다. 일곱 명 중 ‘마침 시간이 남아서’ 참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두 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중 D는 활발히 활동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 봉사단 소식을 접했을 때도 잔뜩 쌓여 있는 일을 정신없이 해치우던 중이었다. 쌓여있는 일을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해야 했지만 D는 망설였다. 평소 자신의 재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스케줄 표를 바라보던 D는 결국 용기를 냈다. 봉사 여행을 가는 동안은 일감을 받지 않기로 했고, 미리 받은 일들은 작업 시간을 늘려 여행 전에 마무리했다. 워낙 일이 많아서 봉사 다녀오는 일주일 정도를 빼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작업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K는 미국에서 자신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D를 통해 베트남 소녀들을 위한 미술 봉사 소식을 들은 K는 봉사 여행 기간에 맞춰 휴가를 냈다. 그리곤 12시간을 날아 한국에 도착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잠깐 서울에 머무는 동안에도 K는 시간을 쪼개서 미팅을 다녀야 할 정도로 바빴다. 미팅을 다니는 와중에도 K는 봉사단 사전 모임에 참여했다.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영어로 대화해야 했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세 단원들과 가까워졌다. K는 봉사단원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생 다섯 명도 바쁜 시간을 쪼갰다. G와 Y는 각각 발레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둘 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방학을 맞아 발레 학원과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두 명 다 봉사 여행에 참가하기 위해서 일하는 곳 수업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둘은 학원에 양해를 구하고 보충수업을 하는 등 미리 수업 시간표를 조정해서 봉사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M과 J, T도 대학생이다. M은 한창 바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J는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T도 진로를 위해 관련 훈련을 받으면서 식단조절을 하는 등 몸을 관리하고 있었다. 셋 역시 봉사활동 참가를 결정하고 모든 스케줄을 조정했다.     


또 놀라웠던 건, 봉사단에 참여해도 줄 수 있는 혜택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다들 기꺼이 지원했다는 거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이번 봉사단 프로젝트에 회사에서 허락해준 것은 나라는 인력의 일주일 활용뿐이었다. 참가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값과 숙박비, 활동비를 포함하는 비용을 자부담해야 했고, 이름만 봉사 ‘여행’이지 여행 스케줄도 따로 없었다. 그저 하루 봉사 일정을 마친 후에 주변 시장을 돌아보거나, 아이들이 미술관이나 인형극 관람을 할 때 봉사단원들도 같이 참여하는 정도였다. 내가 봉사단원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봉사활동 시간뿐이었는데, 참가자 대부분은 이게 별로 필요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뜨거웠던 봉사 현장


일곱 명의 봉사단원들과 함께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는 8월 말.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다. 아이들이 사는 보호 시설은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건물 환경은 쾌적하지 않았다. 침실 벽에는 개미가 줄지어 기어 다녔고, 청소 상태가 좋지 못 했다. 하나 있는 화장실도 매우 지저분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양말 바닥이 새카매졌다. 40도 가까운 폭염이 극성이었지만, 건물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없었다.


작은 건물에는 프로그램을 진행할만한 넓은 방이 따로 없어서 우리는 아이들을 몇 그룹으로 나눈 뒤 방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으로 공간을 활용했다.      


1층 주방에서는 발레리나 G의 동작을 보고 특징을 빨리 잡아내 그림으로 옮기는 ‘스피드 그리기 게임’을, 2층 침실에서는 Y가 1:1 미술 심리검사를 진행했고, 바로 옆 교무실에서는 D와 K가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드로잉’을 가르쳤다. 3층 침실에서는 M이 미취학 아이들과 함께 팔찌 만들기 놀이를 진행했고, 1~3층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은 순서대로 4층 공부방에 모여서 J, T와 함께 그림 달력을 만들었다.      


덥다 못해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봉사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봤다. 오후 늦게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되면 이미 옷은 잔뜩 젖어있고 온몸이 끈적끈적했다. 그래도 모두 정말 밝았다. 누구 하나 덥다고 불평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빼지 않았다. 다들 웃었고 정말 열심히 했다.      


며칠간 함께 밥을 먹고, 같이 놀러 갔다 오고, 그림을 그리고, 팔찌를 만들고, 심리 상담을 하고, 디지털 드로잉을 배웠다.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발레리나 봉사자가 동작을 취하면 나머지 봉사자들과 아이들이 재빨리 스케치북에 동작을 따라 그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들 같은 동작을 하며 춤을 추기도 했다. 봉사자들은 아이들을 최대한 많이 안아주려 노력했다. Y는 상담 과정에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을 찾아냈다. K와 D는 미술과 표현에 소질을 보이는 아이를 발견했다.      


매달리고 안기는 아이들을 이끌고 근처 인형극장과 미술관으로 소풍도 갔다. 센터 아이들이 단체 소풍을 가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인형극도 미술관도 처음이라고 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따라 그리고, 미술관 곳곳에 숨어있는 봉사자들을 만나 스티커도 받으며 즐겁게 미술을 즐겼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술과 예술에 대한 좋은 기억과 감정을 심어주고 싶었고, 예술을 가깝게 여기고 쉽게 그릴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그리고 혹시 누군가에게는 이게 새로운 선택지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렇게 유독 뜨거웠던 여름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좋은 일을 위한 용기


봉사가 끝난 뒤 K는 내게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잔뜩 담아 이메일을 하나 보내줬다. 알고 보니 K는 이전에도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자주 해왔단다. 나 혼자, 그것도 처음으로 꾸린 봉사 여행은 분명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K는 여행 내내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봉사단원들과 함께 어울리고, 덥고 습한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었다. 그리고 여행이 다 끝난 뒤, 개선되었으면 좋을 점을 자세히 정리해서 친절하고 정중하게 제안해줬다.      


미술학원 선생님 Y는 다음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싶다며 언제든 다시 불러 달라는 말을 남겼다. 아프리카여도 상관없고, 환경이 더 열악해도 상관없다고. 바쁜 일러스트 프리랜서 D는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패턴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혹시나 아이들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J는 다음 봉사활동에 데려갈 친구들 이름을 나열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내놓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현지에 봉사를 가는 건,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서 본인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에는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다들 어떤 개념은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선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쓰고, 경제적 부담을 지고 정성을 다하는 일을 좋은 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일에 참여하고 남을 돕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기회(!)가 닥치면 정말로 그 일에 선뜻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일이 많아서 못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시간이 없고 돈이 없고 일이 많다. 문제는 우리 삶이 늘 그렇다는 거다. 돈과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고, 마음이 준비가 안 됐거나 여러 가지 일로 참여할 형편이 안 된다. 그러니까, 마음이 있어도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실제로 흔히 말하는 ‘좋은 일’에 참여하는 경우가 상당히 드문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정말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잘 못 한다. 늘 핑계를 댔다. 그래서 이 봉사단 친구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삶을 잘 꾸려가기 위해서는 지금 주어진 현실과 자신의 일에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지금의 삶을 잠시 멈추거나 삶의 일부를 떼어줄 수 있겠냐는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좋은 일에 기꺼이 참여하는 용기인 것 같다. 맞다. 좋은 일에 참여하려면 정말 용기가 필요하다.      


언젠가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그땐 용기를 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명히, 그 용기가 만들어 내는 기적이 우리의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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