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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Feb 01. 2021

작은 일 같은 건 없어

당신이 지탱한 세상

실무의 말단보건 요원

NGO에서 일할 때 종종 해외 출장을 갔다. 이때 회의나 면담을 통해 여러 이해관계자를 만나곤 했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구청장님이나 시장님, 더 나아가 행정부 관계자들이나 지역 의원들을 만나게 될 때도 있었다. 지역 촌장, 공공 의료기관의 병원장, 사립 병원 의사, 행정기관 담당자 등 관련 인사들을 여럿 만났지만, 출장을 다녀온 뒤 한참 지나도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무자였다. 그중에서도 보건 요원들(Community Health Workers)이 더욱 그랬다.     


보건 요원(CHW).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만나기 힘든 직군이다. 의사도 간호사도, 산파도 아니며 간호조무사도 아니다. 이들은 주로 저개발국에서 부족한 의료 기능이나 접근성을 보완하기 위해 운영하는 체제 직군으로, 국가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몇 주에서 몇 달 정도의 교육을 받은 뒤 지역 의료기관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대부분 직접적인 의료 처치를 담당하지는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보건 요원들은 의사나 간호사보다 전문성도 떨어지고, 맡은 업무도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출장지에서 만났던 그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탄자니아 시골 마을에서 만났던 보건 요원들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지역 보건 의료 상황에 대한 질문에 아주 열정적인 태도로 장장 두 시간 넘게 대답해줬다. 보건 요원들은 특히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정보가 빠삭하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조사를 완료하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다.     


말라위 시골 마을에서 만난 앳된 보건 요원도 기억난다. 우리나라였으면 이제 고등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청년이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백내장 수술을 진행한 뒤, 해당 주민들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 조사를 진행했었는데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온 그 보건 요원이 내내 현장을 통솔했다. 오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주민들 옆에 붙어서 손짓, 발짓을 동원한 통역도 해주고, 준비한 빵과 음료도 나눠주고, 참석자 명단도 확인하며 설문 과정을 도왔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보건 의료 인력을 피라미드로 쌓는다면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직군. 하지만 저개발국 보건의료 사업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직종이다. 으리으리한 최신 병원을 지어놔도, 대단한 의사를 모셔와도, 수많은 약을 쌓아놔도 그 서비스에 환자가 접근할 수 없으면 다 말짱 꽝이다. 접근성과 지속성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 보건 요원은 저개발국가에서 비교적 낮은 기회비용으로 주민들의 접근성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만난 보건 요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직업에 상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저개발국에는 주민 수에 비해 병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에 몇 개 없는 상급 병원은 대부분 큰 도시에나 있다. 저개발국에는 의사가 항상 모자라고 중심지역에서 먼 시골 작은 동네 보건소에까지 의사를 앉혀 둘 수가 없다. ‘아프니 병원에 가서 의사를 본다’는 것은 저개발국 사람들에게 큰 각오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쇠약해진 환자는 병원을 오가기가 어렵고, 대부분 경제 상황도 엉망이다. 몸이 아파서 일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다. 미화 백 달러면 할 수 있는 백내장 수술을 못 받아서 눈이 멀고, 눈이 멀어 농사를 못 짓고 순식간에 가난으로 떨어져 내리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하면 진료를 받고 약을 타가기도 힘들고 (병원이 반나절 꼬박 걸어 산을 넘어가야 나오니까), 어렵게 약을 타와도 음용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식후 30분, 하루 세 번 드세요. 물 많이 마시고요.’ 같은, 흔하디흔한 음용법도 제대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 우선 하루 세 번 밥을 못 먹는 집이 정말 많고, 집에 수도나 화장실이 없는 집도 많다. 진짜 시골엔 시계나 전기가 없는 흙집도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 요원은 진짜 큰 도움이 된다. 영화 「벤딩 디 아크」를 보면 이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아이티 등 저개발국에서는 결핵으로 수많은 환자가 죽어갔다. 뜻있는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이 고군분투했지만, 여전히 사망률은 줄지 않았다. 이때 비로소 보건 요원(CHW)이라는 직군이 생긴다. 이들은 아이티 결핵 사망률 감소에 큰 역할을 하는데, 이들이 한 일 자체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병원과 먼 마을의 결핵 환자들에게 시간마다 찾아가 처방받은 약을 제대로 먹게 하고, 맡은 구역 내의 환자 상태 등을 모니터링해서 병원과 환자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것만으로도 결핵 사망률이 현격히 줄어든 것이다.        


나는 한 지역의 보건 의료를 책임지는 고위 관료나 수도권 내 가장 중요한 병원의 병원장처럼 보건 요원들보다 훨씬 높은 직책의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현장의 보건 요원들이었다. 분명히 작은 역할이지만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사람들 말이다. 정책 단계에서 결정된 일이 실제 현장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커다란 시스템이 기능하도록 중요한 축을 연결하고 지탱하고 있었다.     



작은 일 같은 건 없다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자신은, 특히 우리의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종종 우리가 서로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고 느낀다. 정말 수많은 사람이 사회를, 서로를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예전에 잠시 국내 사각지대 이주민에 대한 의료비 지원 업무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생각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으로 서로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갈 데 없는 병원에 가기 어려운 이주민들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고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행사를 열었던 교회, 휴가를 내고 멀리까지 건강검진을 해주러 온 의사,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말을 전해주던 통역사, 의약품을 기부해준 제약사, 저렴한 치료비로 환자를 봐줬던 병원, 이주민 환자를 위해 방값을 내주던 성당, 한국어가 서툰 엄마가 아픈 아이를 안고 울 때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가 주고 치료비 지원받을 곳을 알아봐 주던 이웃, 심리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을 위해 심리치료 받을 수 있던 곳을 수소문하던 상담선생님, 병원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지원 방안을 물색하던 사회복지사,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 범죄피해자의 수술비를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경찰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1천 원, 2천 원씩 모아 보내준 기부자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알게 모르게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나는 일에 주목하고 환호를 보낸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열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탱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꼭 멀리서만 사례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우리는 운송 노동자들과 전국에 깔린 운송망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 사태 초기 어떻게든 온라인 수업을 해 보라고 교육 현장에 통보가 내려졌을 때, 일선의 선생님들은 낯설고 급작스러운 임무에 당황하면서도 결국 이를 어떻게든 수행해냈다. 자유기고가로서 인터뷰를 하러 갔던 일선의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당시의 당황스러움에 대해 말했었다. 해본 적 없고, 계획한 적 없고, 잘하지 못 하는 일을 당장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다. 덕분에 아이들의 교육이 중단되지 않을 수 있었다.   

    

대중교통 운전자, 공무원, 상담사, 수많은 자영업자, 그리고 각자의 자리를 지켰던 평범한 사람들. 이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유지됐다. 의료진들의 공이 당연히 크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공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세상에 작은 일 같은 건 없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평범함에 낙담한다. 대단한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자신의 역할에 무덤덤해지고 별거 아닌 듯 취급한다. 뜨겁던 열정도 피곤과 삶의 문제 앞에 시들해진다. 그럴 때, 다시 한번 기억하고, 기대해보자. 내가 등을 받쳐왔던 사람들을, 그리고 앞으로 당신 덕분에 또 하루를 살아갈 사람들을 말이다.      

당신의 글 한 줄, 노래 한 음절에 위로를 얻는 사람이 있고, 당신 덕분에 직장에 늦지 않게 도착하는 회사원이 있고, 당신 덕분에 행복하게 배를 채우는 사람이 있고, 당신 덕분에 오늘 저녁상에 올릴 찬거리를 마련한 사람이 있고, 당신 덕분에 약을 처방받는 사람이 있고, 당신 덕분에 안심하고 일하러 가는 사람이 있고, 당신 덕분에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당신 덕분에 깔깔거리며 웃는 사람이 있다.      


당신 덕분에 지탱된 세상이 있고, 당신 덕분에 살아갈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일도 절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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