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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Feb 16. 2021

한밤의 살인미수 사건

늦은 밤, 하숙집에서 살인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퇴근이 늦었던 날


캐나다 생활이 막 2년 차로 접어들 때 즈음. 나는 두 번째 홈스테이 가정에 하숙하며, 오전엔 어학원 수업을 듣고 오후엔 인근 고성 박물관(Craigdarroch Castle)에서 일을 했다.      


보통 저녁 마감을 하고 돌아오면 밤 10시 정도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일이 늦게 끝났다. 성에서 특별 대관 행사가 있어서 마감이 늦었고, 그날따라 버스도 좀 늦게 와서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이었다. 주거지만 있는 동네는 이미 조용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주 조용했던 것과, 공기가 차가웠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걸었나. 저 앞에 하숙집이 가까워지는데, 뭔가 이상했다. 우선 집 앞에 경찰차가 한 대 서 있었고, 경찰 두 명이 차에 기대서 하숙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순간 놀라서 걸음이 멈췄다. 내가 그들을 발견함과 거의 동시에 그들도 나를 봤다. 내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경찰들이 그쪽으로 오라는 듯 까딱 까딱 손짓했다.      


주춤, 주춤. 오라니까 가긴 하는데,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했다. 집 앞에 다다르니 더욱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숙집 건물이 노란 줄로 여러 번 둘러쳐져 있었다. 폴리스 라인이었다. 나를 빼고도 다섯 명이나 더 생활하던 집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고, 불도 다 꺼져있었다.    

 

무슨 일이지? 왜 집 앞에 경찰이, 아니 그 전에 왜 폴리스 라인이.......     

 

혼란스럽게 하숙집과 경찰 얼굴을 번갈아 보던 내게 경찰이 이 집에 사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가까이 서 있던 한 명이 대강이나마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어. 그래서 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     


......뭐?    


             

                  




한밤중 길 위에서     


“그러면, 안에 있던 사람들은요? 다들 무사해요?”

나는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다들 무사해.”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자세만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면 혹시, 들어가서 몇 가지 물건만 가지고 나와도 되나요?”     


나는 2층 내 방 창문을 보며 물었다. 당장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막연히 방에서 뭔가 챙겨 나와야 할 거 같았다.     


“안 돼. 부엌 바닥이 피범벅이라.”     


...... 세상에, 피범벅?


뭐, 당연한 답변이다. 방금 사건이 일어나서 폴리스라인 쳐 놓은 곳에 민간인이 들어가면 안 되겠지. 물어보면서도 별 기대는 없었기에 바로 알겠다고 했다. 경찰이 하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뭔가 현실성이 없었다.      


우선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서서 무작정 큰길로 향했다. 차분하게 잘 대화한 거 같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당황해서 진짜 아무 말이나 한 거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밤에 무작정 길가로 가는 게 아니라 경찰에게 밤을 보낼만한 안전한 곳을 물어보거나 안내를 부탁했어야 했다. 머리가 멍했다.     

 

걷다 보니 좀 정신이 들었다. 충격이 지나가니 막막함이 찾아왔다. 당장 이 밤에 어디로 가지. 치안이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에서 노숙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 들어가 있을 곳도 없고. 알고 있는 숙박 시설도 딱히 없었다. 대중교통은 이미 다 끊겼고 당시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때라 어디 인터넷에 검색해보거나 예약 앱을 쓸 수도 없었다.      


어쩔 줄 모르고 길을 걷는데, 저 멀리 패스트푸드점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그래, 혹시 24시간 하는 곳일지도 몰라. 햄버거 하나랑 커피 몇 잔이면 아침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다.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뛰어가, 문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덜컹!


아...... 문이 잠겨있다.      


어느새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사방이 고요했고,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는 패스트푸드점도, 넓은 도로에도 인적이 없었다. 문득 뒷덜미가 서늘했다.  

    

급한 대로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를 뒤져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미 잘까? 제발 아직 깨어있기를. 만약 안 받으면, 해 뜰 때까지 버티기에 어디가 가장 안전할까?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 한 음 한 음이 끝날 때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 음성이 나올까 봐 속이 덜컥거렸다.      


뚝. 전화가 끊긴 건가 싶던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J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사정을 듣자마자 바로 자기가 사는 홈스테이로 오라고 말해줬다. 콜택시를 타고 J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다 되어있었다. J는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따뜻한 잠자리를 내어준 J와 그녀의 하숙집 가족들에게 얼마나 고맙던지.


         





일상의 연약함, 그리고 소중함


그날 늦은 오후,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전화로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 늦은 밤. 다들 막 침대에 누운 상태였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주인아저씨가 먼저 나갔고, 그 뒤로 아주머니와 아이가 따라 나갔다. 문밖에 선 사람은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아는 얼굴에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었고, 그렇게 사건이 벌어졌다. 그가 갑자기 주인아저씨를 공격한 것이다. 방심하고 문을 연 아저씨의 얼굴에 곰 스프레이를 뿌렸고, 비틀거리며 숙이는 틈을 타 머리에 망치를 휘둘렀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주인아저씨가 반격에 나섰고, 둘은 현관에서 부엌까지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격투를 벌였다. 부엌 바닥은 피와 발자국으로 엉망이었다. 다행히 주인아저씨가 범인을 제압했고 곧 신고를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다. 사건은 미수에 그쳤고 범인은 체포됐지만, 주인아저씨가 많이 다쳤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듣는 내내 현실감이 없었다. 곰 스프레이와 망치라니. 그런데 얘기를 듣다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집에 침입해서 주인아저씨를 공격한 범인, 주인아주머니의 친구였던 그 남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집에 자주 찾아와 주인집 아이와 놀아주거나 같이 웃기도 했던 사람, 와이파이를 연결해준다고 내 방에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아저씨. 그 친절하고 조용하던 사람이 사람을 망치로 쳤다고? 그것도 아는 사람을? 나중에 듣기로는 그 아저씨가 예전에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과 그날의 이상 행동이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하숙집 가족들에게도, 그들을 공격한 아저씨에게도 모두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가, 그리고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안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오늘 마주 보고 웃어주던 사람과 상상도 못 한 이유로 불미스럽게 마주할 수 있고, 당연하리라 생각한 평온한 삶이 갑자기 꺾일 듯 휘어버리기도 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환경을 한 끗 차이로 피해 가면서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도 대부분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고 산다. 그 믿음 위에 일상을 올려놓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일상을 살면서 사회를 이룬다. 하나하나 보면 그렇게 엉성하고 허술할 수가 없는데, 신기하게도 어찌어찌 그럴듯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서로를 보완하며 일상을 이룬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들과 J가 그랬다. 경찰들이 사건 현장을 지키고 있다가 소식을 듣지 못한 하숙생에게 말을 전해준 덕분에, 이미 잠자리에 들었던 J가 새벽 1시에 전화를 받고 자신의 하숙집 방을 내어준 덕분에 나는 갑자기 닥친 당황스러운 일 속에서도 안전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언제나 계속될 거 같았던 일상이 얼마나 쉽게 망가지고 사라질 수 있는지 깨달은 날. 그 아침에 나는 다시 일상을 발견했다. 참 평화롭고 편안했다.      


    

   

그날 일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뭐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다. 만약 원래 귀가하던 시간 그대로 집에 왔다면, 어쩌면 집 앞에서 그 아저씨와 마주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유독 일이 늦게 끝나 귀가가 두어 시간 늦었던 덕분에 그 횡액을 피했다. 그렇게 일이 늦게 끝났던 건 성에서 일했던 모든 기간을 통틀어서 그날이 유일했다. 그때는 그저 정신이 없고 당황스럽기만 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크게 흔들릴 뻔했던 내 일상은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매일 똑같은 하루, 크게 특별할 일 없는 삶.

사실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가 정말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일상은 사실 단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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