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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Feb 17. 2021

외로움 속에서 발견하는 진심

첫 홈스테이, 그리고 이상한 외로움


캐나다 하숙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혼자라고 느꼈던 적이 드물다. 주변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옆방에서는 고등학생인 주인집 둘째 딸 로지가 록이나 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고양이와 노는 소리가 들렸고, 부엌이나 거실에서는 늘 다른 식구들과 마주쳤다. 오후에는 과자나 간식을 꺼내러 온 막내 앤지와 부엌 카운터에 기대 수다를 떨고, 저녁에는 밀크티를 타러 온 장남 데이빗이랑 아시아 문화나 영어 발음 같은 걸 가지고 자주 얘기를 나눴다.  아침이면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랑 인사를 하고, 늦잠을 잔 날이면 출근하는 데이빗 차를 얻어 타고 어학원에 갔다. 오후에는 숙제하는 앤지 옆에서 괜히 라면을 하나 끓여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다가 로지의 진로 고민으로 덩달아 심각해지기도 했다. 앤지가 키우는 토끼에게 쫓겨 도망 다니기도 하고, 로지의 고양이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줬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여섯 식구 사는 집에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저녁에 샤워라도 한 번 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화장실 써도 되냐고 여러 번 말을 걸어야 했는데, 그렇게 확인을 하다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주말이면 주인아주머니랑 거실에서 옛날 영화를 보며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갔다.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은 아주머니 때문에 건강식품 박람회만 했다 하면 모든 부스를 함께 돌며 샘플을 쓸었다.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주인 부부와 자녀 셋. 거기에 나까지. 9개월 동안 여섯 명이 모여 살던 집은 참 정겹고 따뜻했다.      


그런 집을 떠나기로 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빅토리아에 딱 3개월만 머물려고 했던 처음 계획과 달리 체류 기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거의 2년 반, 30개월 정도를 빅토리아에서 지냈으니 10배에 가까운 기간이다. 단순히 오래 머물렀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계속 빅토리아에 있을 생각임에도 9달 만에 홈스테이를 나왔다는 거다.            


그건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캐나다에 온 지 7개월에서 8개월 차였던 거 같은데, 평소처럼 하숙집 식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이상하게 즐겁지 않고, 조금 우울했다. 거실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방에 박혀 있거나 혼자 산책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속이 시렸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친절하고 잘해주는데 왜 나만 갑자기 이럴까. 역시 이상했다. 자괴감이 들어 괜히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욕심이 많아서 그래. 이렇게 잘해주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심통이 난 거야?’     

 

점점 홈스테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힘들었고 괴로웠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을 속으로 괜히 트집 잡았다. 아니, 사람이 여섯인데 화장실이 하나라는 게 말이 돼? 주인아줌마는 왜 자꾸 주말에 나가자고 하는 거야, 귀찮게? 내방 침구가 맘에 안 들어. 색이 이게 뭐야? 방에 먼지도 너무 많은 거 같아. 좀 더 햇살이 잘 드는 방으로 가고 싶어. 생각해보니 학원에서 집이 너무 멀어. 버스로 30분 가까이 걸리잖아? 아주머니가 준비해주는 점심 도시락도 지겨워. 사람이 어떻게 계속 샌드위치만 먹을 수 있어? 그렇게 불평불만에 차서 뚱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니 홈스테이 식구들도 나를 어색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어학원에 다른 홈스테이를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편지 끝에 적은 이상한 문장


그렇게 홈스테이를 떠나기 며칠 전. 막상 떠난다고 하니 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사람들 덕분에 9개월 동안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는데. 추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래도 이미 떠나는 건 결정되어 있으니 이제 바꾸긴 늦었다.      


나는 컴퓨터를 뒤져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모아 USB에 담았다. 그리곤 시내 사진관에 가서 모두 프린트했다. 사진 인쇄가 아니라서 A4 용지에 두 장씩 인쇄되어 나왔는데, 한 장 한 장 오려서 노트에 정성껏 붙였다. 사진 아래에 코멘트도 달았다. 생각보다 매수가 너무 많아서 다 만드는 데 3일 이상 걸렸다. 그걸 만든다고 계속 방에만 처박혀 있어서 홈스테이를 떠나기 전 마지막 일주일 동안 식구들과 제대로 대화도 못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 노트. 맨 뒷장 두 장을 남기고는 사진이 빽빽이 들어찼다.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처음 해변에 놀러 갔던 날, 뒤뜰에서 일광욕하던 날, 다 같이 모여서 바비큐를 했던 여름 저녁, 추수감사절 음식 한다고 부엌이 북적거리던 날,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케이크와 애플파이를 만들어주던 날, 앤지와 피자를 만들었을 때, 데이빗이랑 찬장을 뒤져 야식 라면을 고를 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던 날, 로지의 고양이를 처음 만져보던 날, 같이 뒷마당의 사과를 따던 날 등등. 그 안에 9개월간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진을 다 본 뒤, 마지막 장에 편지를 썼다. 한 장은 영어로, 마지막 한 장은 한글로. 사실 한국어 편지는 그 사람들이 읽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썼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진심을 담았던 것 같다. 그때 적었던 문장 중에 오랫동안 이해가 안 가던 말이 있었다.     


“당신들과 가족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떠나려고 해요.”     


쓰면서도 이해가 안 가고, 그 뒤에도 한참 동안 왜 저런 말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혹시나 다음에 온 하숙생이 한국인이어서 저 내용을 해석해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혼자 민망해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저 문장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사진도, 편지의 다른 내용도 흐릿한데, 저 문장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외로움 속에서 발견한 진심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때와 나이도, 가치관도 목표도 조금씩 달라져 버린 서른 중반의 어느 날. 나는 그때의 내 상태에 대해 말하는 거 같은 문장을 찾았다. 정지우 작가의 책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에서였다.     


“그 속에서 나는 참기 힘든 소외감과 외로움 같은 걸 느꼈다. 여기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들이 매일같이 삶을 일구어 나가고, 기쁨을 나누고, 때론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 속해 있지 않았다. 문득 내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삶은 언제까지고 그들의 친구, 가족, 연인 속에서 이어질 것이었고, 반면 내게는 그런 삶이 언제까지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정 작가의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오래전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당신들과 가족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때서야 알았다. 그 이상한 감정이 외로움이었다는 걸. 그렇게 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즐거운 경험만 하면서도 나는 외로웠던 거다. 그리고 저 문장이 사실 조금 부정확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그 사람들과 정말 가족이 되고 싶었다기보다,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았다는 느낌이 무섭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슬펐던 거다. 그들과 더 친밀해질수록,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과 나의 세계가 다르다는 걸 더욱 명확히 느꼈을 테니까. 그 감정이 일종의 소외감과 외로움이라는 걸 몰라서 더 어쩔 줄 몰랐었다.     


정 작가는 그런 감정 속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목소리에 안도하고 기뻐하는 마음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가, 내 삶이 묻어 있고, 내가 속해 있던 그 모든 흔적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 그건 오사카성이나 오타루 오르골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것은 내가 원래 살던 곳에서 떠나 타지를 걸으며 처음으로 발견한 ‘삶’이었다. 세상 모든 곳, 어디에나 삶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도 삶이 있었다. 아마 그 삶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현실’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내 몸에 삶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며 느끼고 있는 이 낯선 외로움 역시 내 삶에 속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누구의 것도 아닌 고유한 나만의 삶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절절히 와 닿았다.”     


내가 살던 곳. 익숙한 언어와 목소리가 들리는 곳. 편한 음식과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친구와 가족이 사는 땅. 그곳을 떠나 완전히 낯선 곳에 가서야 원래 세상에 속해있는 내 삶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다.           





낯선 곳에서 발견한 나의 삶


안타깝게도, 지금보다 열 살이 어렸던 당시의 나는 그게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일부러라도 한국어를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과 연락도 잘 하지 않았다. 극단적일 정도로 한국어를 끊고, 1년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거의 내내 영어만 사용했다. 일기도 영어로 쓰고, 가족들에게 연락도 영어 이메일로만 했다. 학원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도 영어만 사용했다. 교회도 일부러 현지인 교회를 갔다. 한국 방송은 당연히 보지 않았고, 메모도 가계부도 전부 영어로 썼다. 덕분일까, 그 기간에 영어가 정말 많이 늘긴 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 세계가 더 흔들렸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어쩔 줄 모르고, 내 세계가 아닌 세계여도 좋으니 어디든 속하고 싶어서 안달했었을 거다.     


다행히 그런 불안정한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면 나아진다는 걸 알고 한 건 아니었는데, 아마 본능적으로 그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다시 가족들과 연락하고,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어를 사용하고, 종종 한국 방송을 시청했다.    

 

이전에 오랫동안 가족과 연락을 안 했던 반작용이었을까? 나는 거의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딱히 용건이 없어도 온종일 가족과 영상통화를 틀어놓을 때도 많았다. 가족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거실 화면을 보면서 그 앞에서 식사했다. 두 번째 홈스테이를 나와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일부러라도 재료를 구해서 거의 매일 한식을 해 먹었다. 한국 시각이 밤이라 연락을 할 수 없을 때는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을 재생해 두었다. 동시에 이유 없이 힘들고 외로운 것도 많이 줄어들었다.     




캐나다 생활을 마칠 즈음. 나는 망설임 없이 귀국을 선택했다. 당시 알고 지내던 한국인과 외국인 친구들이 거의 모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캐나다로의 이민, 영주 체류를 결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캐나다에 2년 반이나 머물렀는데 영주권 신청에 관심도 없는 나를 캐나다 현지인들도 외국인 친구들도, 심지어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도 신기하게 여겼다.     


캐나다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캐나다는 정말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한국행이 너무 당연했다. 그때는 그 생각이 너무 확고해서 딱히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확신이 저 때의 극단적인 환경과 외로움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나는 가족이 필요했고, 함께 자란 동네 친구들이 필요했고, 어릴 때부터의 추억이 고스란히 쌓인 교회가 필요했다. 그게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기에 나는 취직 기회, 영주권 기회를 두고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내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바라는 삶이 뭔지 그 진심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십 년 넘게 살았던 땅에서는 몰랐던 진심을, 낯선 땅에서 알게 됐다.     




외로움이라는 건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심하면 사람 하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어쩌면 안 겪으면 더 좋은 감정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있다. 외로움 때문에 주변의 소음도, 스스로가 만들어둔 가식도 모두 제거됐을 때, 그때 오롯이 발견할 수 있는 내 속 알맹이가 그것이다. 그 속 모습과 만나는 게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닐 수 있겠지만, 그때만 찾을 수 있는 진심이 당신만의 행복을 찾는 데 정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가만히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자.

당신은, 나는, 우리는 지금 왜 외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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