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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Apr 30. 2021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래 인생도 뭣도 다 계획대로 안 됩니다.

 석사 유학을 떠날 당시 나는 꽤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성적으로 석사를 잘 마치고, 가능하다면 박사 공부도 해야지. 그리고 이주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언젠가 관련 정책이 필요할 때 참고할만한 양질의 지식과 좋은 연구를 갖춰보리라, 그렇게 다짐했었다.


학교생활도 잘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좋은 성적도 내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학술회나 세미나도 많이 다닐 생각이었다.      


캐나다에서 몇 년을 지내며, 일도 인턴십도 무난히 잘 해낸 덕분에 대학원에 가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나름대로 준비도 열심히 했다. 대학원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비즈니스 영어나 일상 언어와는 또 다르다는 말에 몇 달 동안 아카데믹 라이팅 수업을 듣고, 관련 워크북을 사서 연습했다. 일부러 빅토리아 대학의 학부 프리세셔널 과정도 신청했고, 좋은 성적으로 마쳤다. 영국에 도착해서도 석사 수업 시작 전에, 프리세셔널 과정을 추가로 들었고 이때도 역시 문제없이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준비했다.


언어 장벽이 없을 순 없으니 대단히 우수한 학생이 되긴 어렵더라도, 성실히 따라가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의 그 거대한 포부는 조금씩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첫 주에 수업에 들어갔는데, 수업 10분 만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몇몇 교수님들의 영어가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들었던 소리와 너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황하고 또 당황하다가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났다. 큰일 났다. 이대로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수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음한 걸 집에 와서 들어도 여전히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는 수업이 있었다. 속없이 녹음 파일만 쌓여갔다. 결국 필수 과목이 아닌 수업 중에서, 가장 알아듣기 어려웠던 한 수업의 수강을 포기했다.     


수업 포기를 시작으로, 학기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그중에서 가장 예상치 못했던 건 엄청나게 허덕거리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허덕거렸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읽어야 하는 아티클을 제대로 읽는 것도 힘들었다. 처음에는 꼼꼼히 읽어보려 했지만 몇 번 밤을 샌 뒤 포기하고 나중엔 결국 휙휙 굵은 글씨 위주로 훑어 읽기만 했다. 남들은 펍에 가서 신나게 어울려 놀아도 다음 날 귀신같이 아티클을 다 읽고 수업에 들어오는데 나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면서 수업 때도 늘 쩔쩔맸다. 별로 재미도 없고, 수업도 겨우겨우 쫓아오는 애.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딱 그런 학생이었다.     


그런 상태로 수업을 듣고 토론 튜토리얼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몇 주가 휙휙 지나가 있었다. 그러면 또 에세이 써야 할 시기다. 아니면 시험을 봐야 할 때 거나. 외부 세미나나 학술회 참석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최종 시험 전에는 여기저기서 무서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A가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다가 얼굴 반에 마비가 왔다더라. C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한다더라. S는 요즘 코피가 그렇게 많이 나서 걱정이라더라, J가 며칠을 커피에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공부하다가 심장이 너무 뛰어서 911을 불렀다더라, Y가 요새 자꾸 강에 가서 물을 쳐다본다, 등등.     


나도 중간중간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었다. 한 달 가까이 온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고, 며칠 동안 고열이 안 떨어져서 빈속에 타이레놀만 들이부었던 적도 있다. 목이 너무 부어서 며칠 동안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결국 현실을 인지한 내게 남은 건 아주 소소한 목표 하나였다.      



무사히, 살아서, 학기만 다 마치자.     



거기엔 더 이상 멋진 목표도 거창한 계획도 없었다. 오늘 하루 사는 것도 급급했고, 당장 주어진 일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지금 서 있는 길을 끝까지 가는 것, 그것만 생각했다. 사실 그 이상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그리고 다행히, 죽지 않고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꾸역꾸역 쓴, 남부끄러운 논문도 제출했다. 내고 나서도 내가 만든 결과물이 너무 부족해 보여서 졸업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결과 메일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었다.   

  


- 아, 졸업 안 될 거 같아.  

- 아니야, 그래도 혹시 될지도 몰라.

- 되겠냐, 논문이 그 모양인데.

- 그래도...... 시험 성적이나 에세이 성적에 더하면 혹시 모르잖아.

- 정신 차려, 너 시험 성적이나 에세이도 점수 그렇게 높지 않았어.

- ...... (운다)          



그렇게 내적 대화를 마치고 다시 절망했다가, 희망찼다가, 다시 우울했다가.......       

    


- 논문 다시 읽어봤는데, 그래도 나름 그럴 듯해. 졸업 될지도 몰라!

- 그건 네 소망이 너무 커서 판단력을 잃어서 그래.

- 그런가, 역시 망했나....... 으악, 망했어! 아악악!!

- 진, 진정해, 그래도 아직 결과가 안 나왔으니까 혹시 몰라.

- 악악! 아악악!

- .......      

    


이런 걸 계속 반복하다가 드디어 결과 통보 메일을 받았다.   

  

엄청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메일을 클릭했던 게 기억난다. 덜덜 떨며 (긴장으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진짜 몸이 덜덜 떨린다.) 이메일을 열었다. 혹시나 글에 ‘유감’ 이라거나 ‘미안하지만’ 같은 단어가 있을까 봐,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무슨 귀신의 집 코너 돌듯이 속이 덜컹 덜컥 거렸다. 심장이 귀에서 뛰는 거 같았다.  

   

그렇게 읽어 내리다가 결국 ‘Congratulation’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을 때.      


와. 그때 진짜.   

   

계속 덜그럭 덜컹, 쿵쾅거리던 속이 순간 턱 하고 조용해졌다. 나는 몇 번이고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혹시 내가 잘 못 읽은 게 아닐까 싶어서 모니터 위로 손가락을 올려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내가 통과했다는, 졸업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때의 기쁨이란. 감정인지 에너지인지 모를 것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확 발산되는 기분이었다. 특히 머리 쪽으로! 아, 사람들이 말하는 ‘환희’라는 게 이런 감정이구나. 그 뛸 듯이 기뻤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생각해보면 그때 진짜 방 안에서 좀 뛰었던 거 같기도 하다.   

  

입학 전에 거대했던 포부에 비하면 손에 쥐어진 결과는 한참 부족했지만,  높은 성적으로 졸업한 동기들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사실 목표와 계획은 다 어그러졌지만, 그런 건 정말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내 손에 쥔 것이 어찌나 뿌듯하고 기쁘던지. 죽을 둥 살 둥 굴러서 손에 쥔, 평범한 그 결과가 아주 값지고 귀했다. 그건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과정을 모두 거친 뒤에만 알 수 있는 기쁨이었다.     

 

시작 지점에 서 있을 때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그리고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을 나도 좋게 여기고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막상 길 위에 발을 올리고 나니, 이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새로운 환경, 조건,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몰랐던 내 특성이나 한계, 그리고 가치 등 수많은 변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변수를 안고, 버리고, 때론 그런 변수에 걸려 넘어져 가면서 종착점에 도달했을 때. 내가 알고, 이해하고, 바라는 것들은 시작점에서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우리 삶도, 그리고 여행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모자람을 최대한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여정의 끝까지 걸어가는 것. 때론 그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하다. 출발 당시 원했던 목표지점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게 얻게 되는 과실이 있다. 그 예상치 못한 결과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있다. 그 수많은 변수가 모여 한 사람이 된다.     


그러니 길 위에 올라가 봐야 안다. 시작점에 서기 전까지 열심히 고민하고 계획해도 이는 언제나 한계를 가진다. 심지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사실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걸 길 위에서야 깨닫는다.      


우리는 너무 ‘완벽한’ 시대에 산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잘 사랑하지 못한다. 완벽해 보이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미워한다. ‘좋은 것’의 기준이 너무 많고 강렬해서, 아무리 내가 열심히 달렸어도 거기 도착하지 못했다면 다 그냥 핑계고 변명이라고 말한다.     


이는 조금 오만해 보인다. 삶의 모든 키를 자신이 잡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노력하면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데 네 노력이 부족해서 닿지 못했다는 논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마치 유일한 변수가 사람의 노력인 것 같이 들린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보자. 정말 노력이 그 모든 ‘삶의 아름다운 열매’들에 닿는 방법인가. 그 모든 책임을,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판결받은 사람에게 돌리는 게 맞는가. 정말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한 노력이 성공과 실패의 키인가. 사실은 우리가 다 알다시피, 다 세기도 어려울 만큼의 추가 요소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판단에, 그리고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게다가 내가 지금 ‘저게 가장 좋아 보여. 그러니 저걸 목표로 가겠어’라고 생각해도, 그게 정말 우리에게 가장 좋은지,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게 가장 좋은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게 한계와 '나는 한치 앞도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면, 그제야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한계를 보면서 가능성을 느낀다니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렇다. 한계와 가능성은 종종 짝꿍처럼 같이 다닌다. 한계를 받아들이고, 더 넓고 새로우며 내가 모르는 변수가 가득 찬 세계에 발을 들이면, 그 여행을 끝낸 뒤에는 또 새롭게 변해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목표도 세우지 말고 노력도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목표, 계획, 노력 모두 삶의 멋진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며 떠난 길이지만, 사실 가는 과정에서 본 풍경이나 느낀 생각이 당신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반대로,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도 그 자체로는 당신에게 큰 감흥이나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삶도 그렇다. 삶은 0세에 출발해서 80세에 어딘가에 도착해야 하는 경기가 아니다. 중간에 수없이 많은 순간이 있고, 그만큼 많은 실패와 실수가 있으며, 배움이 있다. 


다들 어릴 때 방학 계획을 짤 때부터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수없이 짰던 계획과 목표들이 있었을 거다. 결과는 어땠는가? 딱 그 계획들만큼 많은 변경이 있었지 않은가? 그리고 변경된 목표와 계획, 수많은 변수 사이를 정신없이 헤매며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각자에게 맞는 성과나 변화를 만났을 거다.      


시간이 쌓이고, 평범해 보이는 오늘이 모이고 모인 끝에, 삶은 그 어딘가에서 끝이 난다. 걷다 주저앉고, 달리다 한참 쉬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아예 그 길이 맘에 들어 방향을 틀기도 하며, 때론 온 길을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그 과정을 여러 번 거친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순간 속에서 평생을 배우고 고민하고, 실패하다가, 어느 순간 성장하고, 그러다 또 멈추고, 문득 달라진다.      

 

그러니 오늘 너무 절망하지 말자. 잘 안 되지만, 이거야말로 그러려고 ‘노력’해보자.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만큼 답답하고 느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삶은 단기전이 아니고, 아직도 레이스는 남았다. 끝까지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모습이 될 수 없다고 해도 그 또한 괜찮다. 우리 대부분이 종종 착각하지만, 우리는 1등을 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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