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공기 흡입 희망

사놓고 쌓아놓은 책 탑, 누가 ‘호흡 독서법’ 같은 거 좀 만들어줬으면

by 빛탐


“미래의 내가 읽겠지.”


과거의 나라는 자는 어째서 절제를 모르고 매번 무책임한 책 소비를 반복했을까.


책을 향한 욕구가 솟아오를 때 마다 내키는 대로 사재껴 댄 결과, 현재, 그 소위 ‘미래의 나’를 담당하고 있는 본인은 이제 온 방에 쌓인 책 탑 속에서 생활이 불편할 지경이다. 사 모은 책들은 물론, 당연히, 다 못 읽었고. 심지어 내가 이런 상황에 너무 익숙하다는 점도 맘에 안 든다. 기억 속 내 방은 늘 이 모양이다.


나는 어떤 주제에 관심이 생기면 해당 분야 책을 닥치는 대로 사 모으는 버릇이 있다. 이 말만 들으면 그게 뭐가 문제냐, 그냥 출판계의 멋진 호구....가 아니라 빛과 소금이 아니냐 싶겠지만, 그렇게 모은 책을 다 읽기 전에 다른 관심사가 생겨서 또 새로운 탑이 솟아오른다는 게 문제다.


artem-beliaikin-LG7J2-NCois-unsplash.jpg



그렇게 집에 들인 책이 다 몇 권이란 말인가. 쌓인 책들의 등을 살펴보니 종류도 분야도 다양하다.


저축, 주식, 금리, 부동산.... 저 때는 돈을 모으고 싶었던 것 같고. 뇌과학, 습관, 집중력, 정리.... 저 때는 아마 새롭게 배운 뇌과학인지 성공학인지 모를 주제가 재밌었던 것 같다.


원서로 뒤죽박죽 꽂혀있는 [나니아 연대기], [위대한 개츠비], [어린왕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아, 저 때는 영어를 제대로 익혀보겠다고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을 때네.


[화해], [당신이 옳다],... 뭔가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나 본대?


[하나님의 뜻],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하나님의 열심], [기도는 죽지 않는다]. 아 이때는 한창 성령에 충만했었던 것 같다.


[영어사], [리바이어던], [군주론].... 대학 때 읽었던 책들은 이제 슬슬 처분해도 되지 않을까? 아, 아직 다 못 읽은 부분이 있다고... 응, 그래.......


이제는 이렇게 쌓인 탑들이 너무 많아서 삶이 불편할 지경이다. 물론 책은 죄가 없다. 욕심은 많으면서 충분히 부지런하지 못했던 내가 문제다.





ludmila-uleva-ylTyjy0McZA-unsplash.jpg



으레 책을 둘법하다 싶은 장소란 장소는 이미 다 점령당했다.


책장은 당연히 꽉 찼고, 책상은 서점 매대 같아졌다. 죄다 책이란 소리다. 중앙의 노트북 공간만 겨우 살아남았다. 책상 가운데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마우스 하나가 겨우 움직일 만큼의 공간만 남아있다. 그나마도 작은 사각형 마우스패드가 미리 깔려 있었던 덕분에 겨우 점령을 면했다. 왼쪽은 그마저도 없어서 노트북 옆이 바로 책 탑이다. 노트북을 열고 닫을 때 마다 쌓여있는 책과 겨우 충돌을 피하며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란. 누구네 어머니가 보셔도 한숨 쉬실 꼴이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책은 방바닥으로 향했다. 덕분에 내 방에는 길도 하나 생겼다. 일명 ‘책길’ 인데, 책상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는 동선을 따라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만큼의 공간이 책더미 사이에 오솔길처럼 나있다. 주변으로는 낮고 높은 책탑이 쭉 늘어져 자연스럽게 일종의 담이 되었고 말이다. 당연히, 일부러 만든 건 아니다.


그래서 저 책들을 다 어쩐다.


그대로 살자니 이제 슬슬 정말 불편하고, 버리자니 ‘아깝게 뭐하는 짓이냐’며 내내 도움 하나 안 주던 ‘과거의 나’가 펄쩍 뛴다. 이 자아는 심지어 ‘안 읽은 책은 이 집에서 절대로 나갈 수 없다’며 아주 고집불통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양심 있어? 이게 지금 다 너 때문이라고. 사는 사람 읽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또 읽고 치워야 하는 사람은 나지. 어휴, 지겨워.


몰래 헌책이나 중고로 팔까도 생각해봤지만, 가격이 말도 못하게 후려쳐지는 걸 보고 포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1/10도 안 되는 가격이라니, 그건 너무 아깝잖아. 쩝.




ed-robertson-eeSdJfLfx1A-unsplash.jpg





책을 들이 마실 수 있으면 좋을텐데.


상황이 이러니 막막해서 별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 읽어서 치우기에 양이 너무 많으니 혹시 호흡하듯이 한 번에 흡수할 수 없을까? 쌓여있는 책들을 향해 습- 하고 숨을 들이쉬면, 책을 다 읽은 것처럼 내용을 알게 되는 거다. 물론 한 번에 받아들인 지식을 소화하기 위해서 충분한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책을 치울 수는 있을 거 아닌가. 그러면 저 책들 저거, 다 순식간에 읽고 마음 편하게 정리할 수 있을 텐데. 그 뒤로 새로 쌓이는 책들은 이제 한 권 한 권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거지. 오, 좋은데?


아무쪼록 하루 빨리 호흡 독서법이 개발되길 기다리는 내 마음이 퍽 간절한 것과 별개로, 현실은 현실이니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느리지만 뭐라도 읽어야지. 그래야 좀 치울 수 있을 거 아닌가.


우선 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니아 연대기]. 두껍고 크다. 국문판 전편인데, 순전히 두꺼워서 눈에 띄었다. 그래도 아이들도 읽는 책이니 다 읽기 어렵진 않을 거 같다. 얼른 완독해야지.


이거 하나 읽고 빠지만 그래도 좀 빈공간이 생긴 것 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다 읽으면 이제 그 다음은 책장 한 칸을 다 잡아먹고 있는 저 [토지] 전편...... 어휴, 진짜. 과거의 나 어디 갔어! 당장 이리 안 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랜만에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