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12 할머니는 왜 꽃분홍색을 좋아할까?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라는 것

by Off the record









Q. 12

from 할머니는 왜 꽃분홍색을 좋아할까?


방학 때 시골에 가면
늘 꽃분홍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밭일을 하다 말고 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오시곤 했다. 가끔 다른 색 옷도 입으셨지만, 할머니를 떠올리면 꽃분홍색이 눈앞에 선할 만큼 그 색을 자주 입으셨다.



그 할머니의 그 손녀라고,
어릴 땐 나도 분홍색 마니아였다. 뭐든지 분홍색이어야만 했다. 같은 색을 좋아해서 인지 할머니가 친구같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가 꽃분홍색을 입을 때마다

“엄마, 옷이 그게 뭐야. 내가 새로 사서 보낸 거 있잖아. 아끼지 말고 그거 입어.”
라고 했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사준 옷은 은은한 광택이 나는 남색(네이비)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 옷은 할머니가 입는 꽃분홍색 옷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할머니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꽃분홍색 옷을 자주 입으셨다.



그 엄마의 그 딸인 건지..
몇 년 전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가 불쑥 이런 말을 하셨다.

“참 이상하다, 요즘은 뻘건 게 예뻐 보여. 나 안 그랬는데 늙었나 봐 ~”

베이지색과 회색을 좋아하는 세련 쟁이 엄마가 갑자기 왜 저럴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는 볼 수 없는 할머니의 꽃분홍색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응~ 엄마 눈에 예뻐 보이면 됐지. 뭐가 그렇게 예뻤는데? 사줄까?”

했더니 아니라고 하시면서 쓱 스마트폰을 내미신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었나 싶다.
그런데..
할머니가 되면 좋아하는 색도 바뀌는 걸까?

이러다
엄마도 꽃분홍색 마니아가 되는 걸까?









A. 12

to ‘분홍색 마음씨’



여자라면 다들

왕년에 ‘한 분홍’했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아기처럼 변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릴 때 좋아하던 붉은 색이나 꽃분홍색을 할머니가 되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사실 할아버지들도 나이가 드시면 붉은색 계통을 좋아하게 되신다.



왜 그럴까?



투명한 젤리

스마트폰 케이스를 쓰다보면 처음에 얼마간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렇게 변색이 된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본래의 투명성은 잃고 만다.


우리의 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안구를 구성하는 수정체는 나이가 들면서 투명성을 잃고 점점 누렇게 된다. 하지만 몇십년의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사물을 볼 때 누렇게 보인다고 인지하지는 못한다.


다만

선글라스를 끼면 사물의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것처럼 노래진 수정체로 보는 푸른 계열의 색은 예전과 조금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파란색을 노란색 렌즈를 끼고 보는 기분이랄까? 그렇다 보니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노란색과 비슷한 따듯한 계열의 붉은 색들이 눈에 더 편하게 느껴지고 좋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혈색이 젊었을 때보다 어두워진다. 피부에 붉은 기가 적어지는데 특히 입술색이 그 선홍빛을 잃고 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피부에 닿는 화장품이나 옷의 색으로 생기를 보충하게 된다.


‘분홍색 마음씨’의

할머니는 농사일을 하셨으니 피부가 햇볕에 그을려서 더 혈색이 없어 보이셨을 것이다. 또 밭일로 바쁘시다 보니 화장을 하긴 어려 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꽃분홍색 옷으로 얼굴이 생기를 주려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색채학에서는

유아나 어린이의 경우 분홍, 노랑, 흰색, 주황, 빨강을 좋아하다가

성인이 되면서 푸른색을 선호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가

노년기에 접어들면 차분한 색, 약하거나 연한 색을 선호하게 되며 빨강, 녹색 같은 원색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분홍색 마음씨’의

할머니처럼 햇빛을 많이 보는 일을 하거나 그런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선명하고 화사한 색채를 선호한다고 한다. 가끔 TV에서 시골 장터에서 파는 할머니 옷들이 온통 알록달록한 색 천지였던 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물론 좋아하는 색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수정체는 나이듬 앞에서 그 투명함을 잃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어떤 색이 좋아지게 되서 낯설어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땐

‘분홍색 마음씨’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나 할머니의 꽃분홍색을 ‘분홍색 마음씨’처럼 센스 있게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우리의 분홍색 마니아시절을 지지해주신 분들이니깐 말이다. 미처 챙기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요즘 어르신들께는

현금이 효도라고 하지만 사실 마음을 알아봐드리고 지지해드리는 게

진짜 마음까지 전해지는 효도가 아닐까 싶다.



내 취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무조건 그쪽 의견에 동의하거나 당신이 틀리고

그 사람이 옳다고 말하라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라는 뜻이다.


상대방의 입장, 그 사람이 옳다고

믿고 있는 사실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 조나단 로빈슨 -










'자존감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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